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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와 구분 못했는데…” 엔드라인도 내달리는 쿼터백

입력 | 2019-08-07 03:00:00

[열정은 프로 내 옆의 고수]
사회인미식축구리그 최강 ‘서울 바이킹스’ 최성훈씨




최 씨는 한낮 기온이 섭씨 35도를 넘겨 폭염경보가 발효된 4일 서울 서초구 신동중학교 운동장에서 소속 팀 서울 바이킹스 동료들과 3시간 넘게 훈련을 진행했다. 최 씨는 “이렇게 더운 날 훈련하고 나면 3kg가량 체중이 빠진다”며 웃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보건원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군 대체 복무 중인 최성훈 씨(30)는 주말이면 인조잔디가 있는 학교 운동장을 찾는다.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미식축구로 날리기 위해서다.

최 씨는 사회인미식축구리그(KNFL) 최다(6회) 우승팀 서울 바이킹스의 쿼터백이다. 사무실에서는 보고서를 쓰는 연구원이지만 필드 위에서는 공격작전을 진두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이다. 2005년 창단한 바이킹스에 2013년부터 몸담아 팀을 대한민국 사회인리그 최강으로 이끌고 있다. 2017, 2018시즌 우승팀 바이킹스는 리그 사상 첫 3연패를 노린다. 국내 미식축구 사회인리그는 직장인들이 주축이 돼 주말에 훈련하고 리그를 벌이는 ‘아마추어’지만 5팀이 매년 5, 6월 시작해 12월까지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못지않은 뜨거운 레이스를 펼친다.

주중에는 한국수력원자력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는 최성훈 씨는 주말이면 사회인 미식축구 최강의 쿼터백으로 변신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최 씨는 연세대 1학년 재학 시절 미식축구 동아리 ‘이글스’의 모집 공고를 보고 처음 발을 들인 뒤 12년째 미식축구에 빠져 살고 있다. 그는 고려대와의 정기 체육 교류전인 ‘연고전’에 선수로 나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식축구부에 가입했다. 연고전에 포함된 종목이 미식축구가 아니라 럭비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즈음에는 이미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흐른 뒤였다. “발을 너무 깊이 담근 거죠(웃음). 나중에는 전공이 미식축구고 원래 전공인 통계학은 부전공이라는 말을 하고 다닐 정도로 미식축구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어요.”

182cm, 95kg의 다부진 체격의 최 씨는 높은 전술 이해도와 강한 어깨, 빠른 주력을 가진 선수로 성장했다. 대한미식축구협회 박준석 사무국장은 “이달 중순 선발하는 국가대표 상비군에 1순위로 뽑힐 만한 쿼터백이다. 패스 능력도 뛰어나지만 체격이 좋아 직접 달리는 플레이도 뛰어나다”라고 말했다.

최 씨는 패스와 러시가 모두 가능한 ‘듀얼 스렛(dual threat)형’ 쿼터백이다. 쿼터백의 공격 전략에는 다른 공격수에게 패스하는 전략과 자신이 직접 공을 들고 달리는 ‘러시’ 전략이 있다. 패스 전술만 수백 가지인 NFL에서는 안정적인 공격을 위해 대다수 쿼터백이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하지만 다양한 패스 전술을 연마할 시간이 부족한 대학 리그나 아마추어에서는 듀얼 스렛 쿼터백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단단한 체격과 빠른 발을 가진 최 씨는 직접 공을 들고 달려 터치다운을 시도하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물론 이런 실력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니다. 최 씨는 대학 때부터 매일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 지금도 매일 점심시간 1시간을 이용해 헬스장을 찾는다. 흔히 ‘3대 중량 운동’으로 알려진 벤치프레스, 스쾃, 데드리프트 중량을 합해 520kg을 들어올릴 정도의 실력자인 그는 퇴근 후에는 수영, 달리기 등 보충 운동을 한다. 그는 “격렬한 운동인 만큼 몸이 만들어져 있어야 부상을 막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함께 운동하는 팀원 대부분이 ‘웨이트트레이닝 광’이다”라고 말했다.

공격 전술 연마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미식축구에서 모든 공격 전술은 쿼터백에서 시작된다. 프로선수만큼은 아니지만 최 씨는 매주 코치들과 세미나, 미팅 등을 통해 전술을 숙지한다. 그는 10여 년간 알고 지낸 일본의 쿼터백 전문 코치로부터 매년 특강을 받는 등 실력 향상에 몰두하고 있다. 최 씨는 “각자 생업이 있는 사회인 팀의 특성상 훈련시간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프로 리그가 없어 전부 아마추어 선수이지만 팀원 모두 대한민국 미식축구를 대표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실력은 아마추어지만 노력과 열정은 프로급이라고 자부한다”며 활짝 웃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