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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나의 지적 영웅… 번역하며 희열 느껴”

입력 | 2019-08-07 03:00:00

다윈 ‘종의 기원’ 초판 번역… 장대익 서울대 교수 인터뷰




장대익 교수는 다윈과 ‘종의 기원’에 대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론이지만 종교적인 이유와 우생학·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한다는 오해를 받아 덜 알려진 측면이 있다. 사실 다윈은 협력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과학과 인문 지식이 충만한 데다 글과 말까지 된다. 경계의 지식을 책과 강연으로 적극 알려온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48)를 지난달 31일 만났다. 서울 관악구 관악로 그의 사무실은 온통 책이었다. 그 가운데 비범한 외양의 책을 뽑아들며 그가 눈을 반짝였다. “다윈은 저의 지적 영웅입니다. 이 흥분을 모두와 나누고 싶습니다.”

최근 그는 다윈(1809∼1882)의 ‘종의 기원’(사이언스북스·2만2000원)을 번역 출간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등이 함께하는 다윈포럼이 준비해온 다윈 선집 ‘드디어 다윈’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그는 “1859년 출간 이후 1872년까지 모두 6번 개정됐는데, 국내 번역서는 대부분 마지막 판을 다뤘다. 초판을 진화학자가 번역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라고 했다.

―초판을 선택한 이유는….

“포럼에서 6판과 1판 간 경합이 뜨거웠다. 초판은 당대 반응을 반영하지 않은 이론이고 6판은 생각의 완성에 가깝다는 논리였다. 개인적으로 2판을 주장했다. 거듭 고쳐 쓰기 전 원형의 생각을 간직한 데다 오탈자만 잡아 완성도가 높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2판도 초판과 판이해서 초판을 택했다.”

―‘종의 기원’ 출간 당시엔 여러 차례 고쳐 쓰는 게 일반적이었나.

“다윈은 소심한 편이라 비판에 일일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학계 반응에 대한 변을 담아 다시 고쳐 썼던 거다. 지금 같았으면 그는 파워 블로거가 됐을 거다. 댓글에 일일이 답하며 소통하지 않았을까?”

―번역에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은….

“한국어로 잘 읽히도록 다듬는 데 공을 들였다. 다윈의 시대에는 문장이 한 페이지를 넘길 정도로 만연체가 유행했는데, 이 때문에 한국어 번역본도 어렵게 느껴졌다. ‘생존경쟁’을 ‘생존투쟁’으로 고치는 등 용어도 대폭 수정했다.”

―많은 이들과 ‘종의 기원’이 주는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복잡하고 정교한 자연세계를 설명할 길을 제시한 역작이다. 또 개인은 거대한 생명의 나무에서 뻗은 하나의 가지에 불과하며, 우연히 빚어진 운 좋은 생명체임을 일깨운다. 성경에 버금가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윈 이후 진화학의 흐름은….

“현대의 생물학은 다윈 진화론의 패러다임 위에서 작동한다. 유전자 중심으로 진화학을 설명한 ‘이기적 유전자’ 등 후속 이론이 나오고 있다. 진화윤리, 진화심리, 진화경제 등도 등장했다. 전례 없이 생산적인, 겨자씨 같은 학문이다.”

―다윈 찬양론자처럼 느껴진다.


“지적인 영웅이자 애정하는 영웅이다. 천재성을 타고난 영웅은 멀게 느껴지는데 다윈은 그렇지 않다. 따개비만 8년을 연구할 정도로 성실히 임하다 보니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인간미를 진하게 풍기지 않나?”

―인문학 성향이 강한 과학자인가, 과학 성향을 지닌 인문학자인가.

“늘 경계에 있었기에, 주변에서도 ‘과학자냐, 철학자냐’고들 묻는다. 정체성을 깊이 고민한 끝에 어느 순간 진화학자라고 스스로를 명명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통섭의 시대에 학문의 경계를 가르는 것도 뭔가 이상하다.”

―과학자들의 시각이 남다른 점은….

“과학자들은 가장 최신의 이야기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옛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했는데, 과학은 영장류학, 뇌과학 등으로 사회성을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왕성하게 저서를 쏟아내고 있다.

“대학원 시절 독서의 즐거움에 눈을 떴다. 어린 시절부터 책벌레였던 인사들을 보면 콤플렉스도 느낀다. 하지만 독서에 늦은 때란 없다. 독서를 하면 실제 뇌가 변하고, 성격과 인생의 변화로 이어진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