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리셋하는 일본]<2>아베 둘러싼 강경파 의원들
지난해 9월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중의원 7선(選)인 히라이 다쿠야(平井卓也)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리며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이례적으로 밝혔다. 그는 “당원과 국회의원의 압도적 지지로 아베 총재의 3선이 결정됐다. 내정도, 외교도 현재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는 아베 총재밖에 없다고 확신한다”고 적었다. 약 한 달 뒤 그는 아베 총리의 새 내각에서 과학기술상으로 발탁됐다.
히라이 의원은 아베 총리와 인연이 깊다. 그는 아베 1기 내각 시절인 2007년 8월 국토교통성 부대신(차관)으로 발탁됐다. 이미 아베 총리와 손발을 맞춰 본 사이인 것이다. 그는 아베 총리와 마찬가지로 ‘세습 의원’이다. 그의 조부와 부친은 모두 가가와(香川)현 다카마쓰(高松)시에서 참의원을 지냈다.
○ 밀고 당겨 주는 세습 정치인들
현재 아베 내각의 대신 20명(아베 총리 포함) 중 세습 정치인은 5명이다. 한때는 세습 의원 비율이 약 60%에 달했다. 일본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반 의원은 산전수전을 겪고 10선 전후쯤에나 총리가 된다. 하지만 세습 의원들은 초고속으로 총리에 오를 때가 많다. 아베 총리 역시 2006년 처음 총리에 올랐을 때 5선이었다. 일본 보수파의 거두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과거 각종 인터뷰에서 “선배 정치인에 비해 2세, 3세 세습 정치인은 배짱도 근성도 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아베 내각에선 세습 정치인들이 총리 돌격대를 자처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정권 2인자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다. 증조부는 조선인 강제징용으로 악명 높은 아소탄광의 창업주였다. 외조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와 장인 스즈키 젠코(鈴木善幸)는 총리를 지냈다. 부친은 중의원 의원, 여동생은 아키히토 전 일왕의 사촌동생인 도모히토 친왕의 아내 노부코 비(妃)다. 그는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등 각종 막말로도 유명하다. 그의 성 아소와 민요가락을 뜻하는 ‘후시(節)’를 결합한 ‘아소부시’란 신조어도 있다. 망언이 워낙 잦아 하나의 가락처럼 독특한 장르를 형성했다고 비꼬는 표현이다.
반도체 수출 규제를 주도하는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도 조부와 백부가 중의원, 부친은 학교법인 이사장을 지냈다. 재혼한 부인도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인 출신으로 역대 최장기록인 1317일간 관방 부장관으로 아베 총리를 보좌했다. “총리를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과 히라이 과학기술상도 세습 정치인이자 각료다. 히라이 과학기술상은 헌법 개정 등 대부분의 이슈에서 아베 총리와 생각이 일치하는 인물로 꼽힌다.
○ 내각-자민당을 오가는 ‘아베 DNA’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장은 아베 총리에겐 ‘충신’으로 꼽힌다. 2006년 아베 1기 내각 시절 관방 부장관, 아베 2기 내각에선 2014년 문부과학상 등을 담당하는 등 내각과 자민당을 오가며 아베 총리를 지원했다. 그는 2007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일부 부모들이 딸을 팔았던 것으로 안다” 등 망언을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그를 내치지 않았다. 그는 자민당 총재특보 등을 거쳐 현재 아베 총리의 숙원 사업인 헌법 개정의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자민당이 젊은이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개헌 관련 만화책을 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맡은 사람이 시모무라 본부장이었다.
지난해 10월 개각 때 망언, 역사인식 부재 등 논란을 일으킨 이들도 대거 각료로 기용됐다. 입각 첫날 군국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이 담긴 메이지 시대의 ‘교육칙어’를 지금도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시바야마 마사히코(柴山昌彦) 문부과학상,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주장해 왔던 여성 관료 가타야마 사쓰키(片山さつき) 지방창생상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외교 소식통은 “아베 총리가 중용하는 이들 모두 전후 세대 출신이다. 이들은 과거에 대한 부채인식이 약하고 개헌을 통해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를 지향한다는 게 공통점”이라고 우려했다. 아베 정권의 철옹성은 그렇게 굳어지고 있다.
도쿄=김범석 bsism@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