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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규칙’ 바꾸는 강대국들[오늘과 내일/신연수]

입력 | 2019-08-08 03:00:00

아베의 한국 배싱은 미국 따라하기… 1980년대 일본 때리기 지금은 중국




신연수 논설위원

예상대로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환율전쟁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중국이 미국의 기술을 훔치고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며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고는 지난해 중국 제품에 25%의 관세를 매기면서 본격적인 포문을 열었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도상국 시스템을 바꾸려는 이유도 중국이 주목표다.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미국의 무역적자가 심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중 무역전쟁은 1980년대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를 연상시킨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 제품을 복제하도록 허용하는 건 자유무역이 아니다”면서 일본에 대해 지식재산권 절취, 환율조작, 국가보조금을 문제 삼았다. 지금 중국에 대한 비난과 많이 닮았다. 당시에도 미국 경제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의 ‘쌍둥이 적자’가 심각했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최근 한 칼럼에서 “미국은 감세와 저축률 하락으로 인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같은 자국의 경제문제를 항상 외부의 악당 탓으로 돌렸다”고 했다.

미국은 결국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을 굴복시켰다. 일본은 엔화 절상에 합의했다. 그 후 미국 경제는 호황을 누렸고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맞았다. 공교롭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당시 플라자합의를 끌어냈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지금은 대표로 중국과의 전쟁 최전선에 있다.

‘리메이크 영화’에선 과거 피해자였던 일본까지 미국의 행동을 따라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한국에 경제 도발을 한 것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어느새 커져 버린 한국 경제를 견제하려는 다목적 포석일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9배였지만 작년에는 한국이 3만1362달러, 일본이 3만9286달러로 좁혀졌다. 이런 추세면 2022년 이후 한국이 일본을 추월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전자 조선 등 일본이 지배하던 산업들은 줄줄이 한국에 빼앗겼다.

아베는 일본의 과거사를 미화하고 동북아 패권에 끼어들어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반전(反戰) 평화주의 노선을 걸었던 친가(親家)보다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이었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후계자를 자처해온 아베다. 그런데 바로 이웃에 있는 한국이 경제 강국이 되고 남북 교류를 통해 ‘강한 한반도’가 되면 강한 일본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게다가 1965년 협정 때는 피해갔던 식민 지배의 불법성이 한국 대법원 판결로 드러나 확산되는 걸 막고 싶을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은 어떻게 될까. 중국은 일본과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중국은 내수 규모에서 일본과 비교할 수 없고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세계 지배의 역사를 가진 중국은 ‘미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100년의 마라톤’을 거쳐 굴기(崛起)하려는 중국과, 세계 패권을 내줄 수 없는 미국 사이에 전투와 휴전이 반복되면서 싸움이 길어질 것 같다. 세계 질서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에서 멀리 넓게 내다보며 한국의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한국은 미중 분쟁과 일본의 한국 배싱으로 피해를 입을 것이다. 미중 갈등에는 직접 관여하기 어렵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도 이제 만만하지 않다. 국제사회에 우리 편을 늘리면서 안으로는 실력을 강화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똑같은 형태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