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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내고 치는데 뭔 상관?” 골프장 최고 밉상 골퍼는?

입력 | 2019-08-08 14:57:00


제148회 브리티시오픈 3라운드에서 셰인 라우리(앞) 뒤로 J B 홈스가 느릿느릿 9번홀 그린에 오르고 있다.

골프채는 4종류다. 좋은 채, 나쁜 채, 비싼 채, 싼 채. 좋은 채는 골퍼가 친 대로 반응한다. 정확하게 임팩트 하면 좋은 결과를 얻지만 잘못 치면 어김없이 대가를 치른다.

나쁜 채는 잘 쳤는데도 엉뚱한 곳으로 공이 날아간다. 반대로 미스 샷을 했다고 느꼈는데 결과는 좋은 경우가 있다. 이는 관용성이 좋은 것과는 다르다. 한마디로 믿을 수 없는 채다. 그런데 싼 채도 좋은 채가 될 수 있다.

골퍼도 4종류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고수, 하수, 매너가 좋은 골퍼, 진상 골퍼가 그것이다. 싱글 핸디지만 매너는 양파(더블 파)인 경우도 있다. 반면 스코어는 신통치 않지만 플레이 매너는 버디급인 골퍼가 있다.

골프 규칙 제1장은 에티켓이다. 스스로가 심판인 골프는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으면 스포츠로서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골퍼가 에티켓을 준수한다면 골프 게임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항상 다른 플레이어를 배려하는 것이다.’ 제1장 에티켓 서론의 일부분이다.

골프가 예전보다 대중화된 요즘 국내 골프장에 가보면 “골프 매너가 형편없어졌다”는 푸념을 실감할 수 있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인 게 늑장 플레이다. 마치 코스 전체를 전세라도 낸 듯, 뒤 팀은 안중에 없는 후안무치 골퍼들이 많다. 마셜(골프장 경기 진행자)이 재촉했더니, “내 돈 내고 골프 치는데 뭔 상관이야”라며 고함을 질러댔다. 직접 목격한 장면이다. ‘손님은 왕’이라는 갑질은 볼썽사납다. ‘이동은 신속히, 샷은 신중히’는 팀 간격이 빠듯한 국내 골프장의 불문율이다.

제148회 브리티시오픈 3라운드 경기 중 셰인 라우리(가운데)가 J B 홈스(오른쪽) 옆에서 앞 조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티샷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슬로 플레이(slow play)는 프로 골프에서도 지탄의 대상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5승이나 거뒀지만 J B 홈스(미국)는 느림보 골퍼로 악명이 높다. 그가 2018년 파머스 인슈어런스오픈 최종 4라운드 18번홀(파5)에서 두 번째 샷에 4분10초나 걸린 것은 단적인 예다. 골프 룰에 한 샷 당 권장시간은 40초다.

당시 같은 조인 알렉스 노렌(스웨덴)은 10언더파로 공동 선두였고, 홈스는 8언더파. 홀까지 남은 거리는 노렌이 230야드, 홈스는 239야드. 이 때 홈스는 3번 우드 또는 5번 우드 사용 여부로 장고(長考)에 들어갔고. 갤러리들이 “빨리 쳐라”는 야유를 보낼 지경에 이르렀다. 홈스가 정작 사용한 것은 아이언이었고 레이업해 3온1퍼트로 버디를 잡았다.

물론 결과론이지만 노렌은 지연 플레이의 희생자가 됐다. 노렌이 오랜 기다림 끝에 3번 우드로 친 두 번째 샷은 그린을 훌쩍 넘어갔고, 파에 그쳤다. 노렌은 일몰중지로 월요일에 치러진 연장전에서 제이슨 데이(호주)에 패해, PGA 첫 우승에 실패했다.

홈스의 늑장 플레이는 최근 브리티시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다시 도마에 올랐다. 홈스는 플레이 속도가 빠르기로 소문난 세계 랭킹 1위 브룩스 켑카(미국)와 같은 조였다. 켑카는 시종 언짢은 표정이었고 12번홀 그린을 빠져 나가면서 경기위원을 향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계를 차는 왼쪽 손목을 가리켰다. 홈스의 늑장 플레이가 심각하다는 불만의 표출이었다.

신경전 탓일까. 두 선수는 그날 모두 무너졌다. 1번홀부터 4연속 보기를 기록한 켑카는 결국 3타를 잃어 4위에 그쳤고, 우승권이었던 홈스는 무려 16타를 까먹으며 67위로 대회를 마쳤다.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이 있다. 제148회 브리티시오픈 챔피언 셰인 라우리(오른쪽)는 3라운드에서 맞대결을 벌인 J B 홈스(왼쪽에서 두 번째)의 늑장 플레이에 아랑곳없이 버디만 8개 잡아냈다.

그런 의미에서 우승자 셰인 라우리(아일랜드)는 ‘꿩 잡는 매’다. 라우리의 3라운드 동반자는 홈스였기 때문이다. 라우리는 그날 보기 없이 버디만 8개 낚아 4타 차 단독선두에 나서며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진정한 챔피언이다.

한편 국내 골프장의 대표적인 꼴불견은 캐디를 닦달하는 골퍼다. 잘못되면 모두 캐디 탓이다. 요즘은 거리측정기로 재본 후 캐디의 실력을 테스트하듯, 남은 거리를 물어봐 비교하는 게 신종 밉상 골퍼란다.

주말골퍼에게 캐디는 단순 보조자가 아닌 동반자다. 어떤 캐디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날 라운드의 질(質)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관계는 상호작용이다. 서로 배려해야 한다. 배려의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격이 떨어지는 내장객뿐만 아니라 골퍼의 심경을 헤아리지 못하는 캐디도 문제다.

과연 나는 환영받는 골퍼인가를 되짚어보자. 룰과 매너 공부는 필수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만 그 무지함이 주변에 폐를 끼치는 건 해악이다. 그게 골프뿐이겠는가.

안영식 전문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