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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文정권의 ‘내 맘대로 한다’… 도 넘었다

입력 | 2019-08-09 03:00:00

조국 장관 검토 고집, 내 맘대로 檢 인사… 비판 개의치 않는 마이 웨이 산물
“남북경협으로 日 따라잡겠다” 황당해도
‘원하는 것 하겠다’에 靑내부 苦言 못해
총선 노린 민족 드라이브 자충수 될 수도




이기홍 논설실장

“최고 통치자는 신념을 끝까지 밀고 가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문재인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이 사석에서 한 얘기다. 청와대의 위기 상황에 대한 얘기 끝에 나온 말이다. 노 대통령은 참모들이 반론을 펴면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지만 최종적으론 자기 생각을 접는 경우가 많았다. 문재인 비서관은 그런 점에선 조금 철학이 달랐던 것 같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3개월간 정말로 ‘끝까지 신념을 밀고 가는’ 대통령을 목도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누가 뭐라든 내 뜻대로 한다’가 트레이드마크다.

결국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할 것이라 하니, 문 대통령의 소신은 역대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다. 법무장관은 이념·정치적 중립성, 객관성, 권위와 신중함이 절실히 요구되는 자리인데, 우리 사회 이념 스펙트럼에서 한쪽의 거의 끝부분에 서 있는 인사를 기어코 써야겠다는 것이다.

조 전 수석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최근 검찰 간부 인사는 ‘내 맘대로 한다’가 대통령 측근들도 공유하는 특질임을 보여준다. 정권이 싫어하는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을 이렇게 중인환시리에 무더기로 좌천시킨 전례는 찾기 힘들다.

과거 정권들은 아무리 내부적으로 곪고 독재를 해도, 여론과 야당의 시선을 의식해 원하는 게 100이면 80 안팎만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정권은 거의 100% 관철하려 하는 게 특징이다.

이는 사회를 선악 이분법으로 나눠, 자신의 반대론자를 악의 위치에 놓는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비판세력의 눈은 의식할 가치가 없다고 마음먹은 결과다. ‘명분, 신념, 결집된 지지세력’이라는 삼위일체만 있으면 돌파하지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필연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만 하겠다’로 이어진다.

“남북 경제협력으로 평화 경제가 실현된다면 단숨에 일본 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는데 이는 위험한 징후 세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 청와대의 시스템 장애다. 즉흥적 발언이 아니었는데 참모들은 사전에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정치인인 대통령의 관점을 외교·경제·전략 보좌진이 걸러줘야 했는데 아무도 그런 말을 못하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이는 정권 내 길항 기능의 마비를 뜻한다. 최고 통치자가 좀처럼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걸 학습한 참모들은 점차 고언을 포기하게 된다. 대통령의 발언 후 현직 장관급 인사마저 지인들에게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입 밖에 내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두 번째 징후는 1980년대 민족해방계열(NL) 시각의 부활 조짐이다. NL은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을 분단으로 봤고, 주적은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미국 일본 등이고 극복 주체는 민족으로 봤다.

세 번째 위험한 징후는 총선과 재집권을 목적으로 한 민족주의 드라이브의 과열이다. 논리적 설득력만 염두에 뒀다면 문 대통령도 그런 발언을 안 했을 것이다.

남북경협이 일본을 이겨낼 동력이 될 만큼 이뤄지려면 북한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완비되어야 하는데 최소한 수년 이상 걸리는 작업이다. 극복해야 할 문제와 대안 간에 시간적 격차가 너무 크다. 당장 수돗물이 안 나오는데 황허 강물을 끌어오면 된다고 하는 격이다.

극일은 시간이 걸린다. 일본이 수십, 수백 년 쌓아올린 기초과학 연구개발을 우리는 새로 투자하는 건데, 정부가 집중 지원하면 시간이 단축은 되겠지만 기술 특허가 독점화되어있는 부분을 국산화한다는 게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부품·소재 국산화를 해도 경쟁력을 가져야 자생할 수 있다. 방위산업이 아닌 모든 부품·소재·장비를 국가예산으로 상용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많은 기업들이 엄청난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지만 친일 매도 분위기에 눌려 내놓고 말은 못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런 낱낱의 사실관계는 어쩌면 청와대에겐 무의미할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국민 일반이라기 보다 핵심 지지층을 겨냥해 장기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분단모순을 극복해 하나 된 한반도의 힘으로 제국주의를 물리친다는 수십 년전 이상론의 21세기판인 것이다.

집권세력은 민족주의 드라이브가 남북관계 이벤트와 맞물린다면 총선·재집권의 특효약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정략적 확신과 그것이 대의라는 주관적 신념이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비전은 몽상과 다르다. 비전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주변국 관계, 세계정세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동방정책의 주역인 서독의 빌리 브란트는 1957년 서베를린시장 시절부터 참모인 에곤 바르와 발언 하나하나를 협의하며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일관되면서도 신중한 메시지가 수십 년 쌓여 훗날 독일 통일이라는 열매로 이어진 것이다.

열광하는 지지층만 바라보며 신념과 명분으로 무장한 채 마이 웨이 하는 현상을 과거 정권들에서 여러 번 목도했는데, 그 결말은 비슷했다. 최근엔 박근혜 정권의 2016년 4·13총선 공천파동이 한 사례다. 대통령의 독선은 총선 참패를 불렀고 탄핵으로 이어졌다. 대통령발(發) 뉴스에 평범한 사람들마저 “어”하며 어이없어하는 현상, 그것은 매우 위험한 적신호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