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대학의 틀 거부하는 새 교육플랫폼 ‘대안 대학’ 속속 등장
‘미지행’은 공존·세계시민·생명을 학교 정신으로 삼은 대안 대학이다. 학생들은 무엇을 공부할지 스스로 정한다. 이수 학점이나 과제도 없다. 지난달 시험 학기 모집에 2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서로를 형, 언니가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 미지행 제공
올해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한 A 씨는 한 달 반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대학에서 지적·인격적으로 성장할 거란 기대가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는 수업의 목표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토론으로 수업을 때운다는 인상도 받았다.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의 권위와 규율도 불편했다.
최근 그는 대안 대학 ‘미지행’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A 씨는 “스승은 정성껏 질문하고 학생은 진지하게 생각한다. 졸업장의 무게는 제도권 대학보다 가벼울지 몰라도 배움의 만족도는 훨씬 커졌다”고 했다.
기존 대학의 문법을 부수는 교육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2015년 문을 연 신촌대가 있다. ‘스피치로 말잘해볼과’ ‘트라우마 극복해볼과’ 등 의문형 ‘까’를 ‘과’로 바꾸고 간판에 대학을 붙였지만 지향점은 대학과 모든 게 정반대다. 학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가르칠 수 있다. 교육부 인가는커녕 뚜렷한 조직체계도 없다. 학비는 2과목에 8만 원(한 달 기준). 수업은 신촌 일대의 공간을 빌려서 연다.
2015년 출범한 신촌대(위 사진)는 이태원대, 구로대, 분당 캠퍼스, 동탄 캠퍼스, 서초대, 테헤란로대 등으로 빠르게 분화됐다. 올해 초 김미경 강사가 진행하는 ‘김미경tv유튜브대’ 입학식에는 1500여 명이 몰렸다. 신촌대·김미경tv유튜브대 제공
이곳의 핵심 가치는 도전과 변화다. 진로 고민으로 끙끙 앓던 이혜민 씨(28)는 신촌대에서 인생 항로를 바꿨다. 인문과 실용을 아우르는 수업을 듣고 학과장으로 강의(‘SNS해볼과’)를 하다 보니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게 됐다. 영양사에서 금융과 마케팅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신촌대는 학과장들이 동네에서 수업을 열면서 이태원대, 구로대, 분당 캠퍼스, 테헤란로대 등으로 분화됐다. 뿌리 격인 신촌대의 시스템을 따르되 지역의 특성을 덧입었다. 구로대는 은퇴 이후 삶을 고민하는 중장년층 중심으로 운영된다. 분당 캠퍼스는 마을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이태원 캠퍼스는 예술 수업이 활발하고 테헤란로대는 금융 수업을 주로 연다. 금융인 출신인 한연숙 테헤란로대 학과장은 “테헤란로가 경제·금융의 메카라고 하는데 관련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전·현직 금융인을 위한 배움터”라고 했다.
2016년 문을 연 파이청년학교는 청년의 길잡이를 자처한다. 초중고교 12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도록 돕는 게 목표다. 이 때문에 인문·심리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년 과정으로, 수강료는 한 학기에 220만 원 선이다.
파이학교는 현장 교육에 특히 공을 들인다. 지난해에는 학생들의 제안으로 게임을 프로젝트 주제로 정하고 게임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수업을 진행했다. 올해 주제는 웹툰. 30년 경력의 웹툰 작가의 작업실을 둘러보고 웹툰을 제작했다.
○ 대안 대학 붐…“수업 내용 잘 따져봐야” 지적도
독학의 보고인 유튜브에도 대학이 존재한다. 김미경 강사가 진행하는 김미경tv유튜브대는 올해 1월 5일 서울의 한 대학 강당을 빌려 출범식 성격의 입학식을 열었고, 1500여 명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동영상을 시청한 뒤 언급된 책을 읽고 온라인 카페에 A4 용지 5장 내외로 독후감을 올려야 한다. 팬덤 중심의 유튜브 기반 독서 대학인 셈이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대안 대학이 빠르게 번지는 배경에는 기존 대학의 침몰이 있다. 이해랑 위원은 “현재 대학은 비싼 등록금에 비해 효용이 떨어진다. 학문의 범위도 제한돼 있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맞춤형 교육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미래 사회에는 빠르게 분야를 바꿔 적응하는 ‘리부팅’ 능력이 중요하다. 초-중-고-대학으로 이어지던 정규 교육과정의 쓸모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입시 중심의 교육체제에 변화가 일고 있다”고 했다.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교육 관계자는 “말이 대학이지 실용학원과 다를 바 없는 플랫폼이 적지 않다. 싼 게 비지떡일 수 있으니 수업 내용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설 snow@donga.com·신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