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폴리페서 논란 속 피해 보는 학생들
2009년 국립국어원이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인 폴리페서를 대체할 우리말을 온라인으로 공모하자 후보에 오른 말들이다. 1909명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 결과 ‘정치철새교수’가 선정됐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위해 학교와 정치권을 철새처럼 오가는 교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학교 복직을 두고 최근 폴리페서 논란이 뜨겁다. 조 교수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 2개월간 휴직과 안식년으로 강단을 떠나 있었다. 9일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그는 지난달 31일 복직 신청을 한 지 열흘 만에 다시 휴직 신청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대학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폴리페서 논란을 들여다봤다.
○ ‘공직자 교수’를 바라보는 두 시선
서울대 내부 여론은 ‘학생들에게 피해 주지 말고 차라리 사퇴하라’는 비판과 ‘조 교수의 휴직·복직은 법적, 절차적 문제가 없다’는 옹호로 나뉘어 있다.
‘폴리페서를 스스로 비판하신 교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그렇게 관대하시니….’(서울대 ‘트루스포럼’ 대자보 내용)
‘휴직·복직은 모두 법률과 학칙에서 정한 바에 따라 이뤄졌다.’(조 교수를 옹호하는 대자보 내용)
서울대 캠퍼스 한 건물 벽에 나란히 붙은 이 대자보들은 조 후보자의 휴직과 복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교수사회에서는 학자의 공직 진출 문제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대 교수는 “선거나 개각철마다 많은 학자가 전문가란 이름으로 권력에 줄서기 경쟁을 한다”며 “이는 대학 발전을 위해서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교수는 “사실상 자기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공직 활동은 더 이상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통한 기여가 아니라 개인적 도전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 ‘임명직 공무원은 문제없을까’
“서울대가 이 상황을 방치하는 게 더 놀랍습니다. 교원이 부족하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이 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울의 4년제 사립대에 다니는 김모 씨(27·여)는 조 후보자의 거취 논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사회 참여가 지식인의 도덕적 의무라 하더라도 휴직으로 인한 강의 공백에는 당사자나 학교 측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공무를 이유로 장기간 강단을 비워야 하는 교수가 교수직을 그만둔다면 다른 교수를 채용할 수 있다. 하지만 휴직을 한다면 그 교수의 자리는 계속 공석으로 남는다. 그의 강의를 필요로 하거나 듣고 싶어 하는 학생들로서는 속수무책이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교수가 임명직 공무원이 된 이후에도 휴직 횟수와 연도(기간)에 제한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한양대를 비롯한 다른 주요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조 후보자가 “(휴직은) 규정상 문제가 없다. (이명박 정부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약 13년간 휴직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규정을 근거로 한 것이다. 실제 박 교수는 약 8년 10개월간 휴직했다.
대학마다 임명직 공무원이 된 교수의 수업 결손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고려대 관계자는 “학교는 교수가 임명직 공무원으로 진출하든, 연구년(안식년)으로 자리를 비우든 똑같은 휴직으로 본다”며 “교수 채용 단계부터 휴직자 고려를 하기 때문에 수업 결손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수직이 비면 초빙교원, 특임교원, 시간강사를 비롯한 다양한 대체 인력을 투입해 공석을 채운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교수사회에서는 수업과 학습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휴직한 교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통상 교수가 휴직하면 시간강사를 채용해 그 자리를 보충한다”며 “전임교원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학생으로서는 학습권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한 교수도 “학생의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수가 있다면 자신의 교수로서의 역할이 미미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영국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한 교수 A 씨는 “영국에서도 한국처럼 학자의 전문지식과 경력을 요구하는 공직에 교수를 기용한다”며 “하지만 해당 교수가 휴직으로 자리를 텅 비워두는 일은 거의 없다. 인력을 보충할 수 있는 비용까지 정부에서 지원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임명직 공무원으로 발탁된 교수들의 장기간 휴직을 용인하는 한국 학계의 현실에 대해 ‘대학교수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배경으로 꼽았다. 한 번 학교를 그만두면 원래 위치로 재임용되거나 몸값을 더 높여 다른 대학으로 가는 것이 쉽지 않은 풍토여서 자리 보전을 위해선 일단 사퇴 대신 휴직을 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학교 홍보를 위해 임명직 공무원이 된 교수들의 휴직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 임명직 공무원에 대한 기준 필요
“미국 행정부 핵심 인사에 교수 출신을요? 옛날이면 모를까, 이젠 거의 없어요.”
대학교수 출신인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서양에도 정치 참여 교수는 많을 텐데 왜 유독 한국에서 폴리페서 논란이 심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미국도 교수가 백악관 핵심 보좌관이나 장관으로 기용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1999∼2001년 재무장관, 2009∼2010년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맡은 하버드대 교수 출신 래리 서머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의원은 “최근에는 대통령수석비서관이나 장관 같은 권력형 정치 참여는 거의 없고 교수직과 병행할 수 있는 정책자문역이 대부분”이라며 “일본이나 독일에서도 한국처럼 교수가 정부의 권력형 요직을 맡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모 대학 사범대의 한 교수는 “한국은 정부 내각을 구성할 때 학계에 대한 의존도가 유난히 높은 편”이라며 “줄만 잘 서면 정부 핵심 관계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연구와 강의를 뒷전으로 미룬 교수가 많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해외 주요국의 대학에서는 공직에 임용돼 학교를 비워야 하는 기간이 2, 3년을 넘으면 사퇴하는 게 일반적인 것이라 알고 있다”며 “한국도 이 같은 기준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선교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무직(임명직) 공무원이 되는 교수도 선출직처럼 휴직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8일 발의했다.
강문구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학자의 사회 참여는 바람직하지만 당파성에 너무 치우친 순간 정치지향적 폴리페서로 전락해버린다”며 “이들이 대학의 가치 지향 범위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공직 입직 및 거취 등의 기준점을 재설정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김재희·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