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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키-얼굴-성격 결정하는 ‘유전자 상호작용 지도’ 나왔다

입력 | 2019-08-12 03:00:00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과 유전자 모니터링 기술을 응용해 단일 세포 수준에서 유전자들의 상호작용을 분석한 지도를 공개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제공

사람 세포에는 유전자가 약 2만5000개씩 들어 있다. 유전자들은 키와 얼굴 생김새, 성격, 생리학적 특성(체질), 특정 질환 발생 가능성 등 ‘표현형’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표현형은 하나의 유전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두 개 이상의 유전자가 서로 상호작용한 결과다. 서로 발현을 돕기도 하고 반대로 억제하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형만 봐서는 어떤 유전자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인지 알 수 없다. 미국 과학자들이 사람의 유전자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유전자 상호작용 지도’를 그렸다. 암이나 치매 같은 심각한 질환이 생기는 원인과 과정을 새롭게 분석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과 유전자 발현 정도를 모니터링하는 기술, 유전자 수백 수천 개를 하나씩 억제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를 한꺼번에 분석하는 기술을 결합해 개별 세포 수준에서 유전자들의 상호작용을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8일자(현지 시간)에 발표했다.

조너선 와이즈먼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세포및분자약리학과 교수팀은 인간의 유전자 중에서 각각 상호작용할 수 있는 조합 6324개에 대해 2만8680가지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 다음 결과를 관찰했다. 연구진은 이 중 다른 유전자와 강한 상호작용을 하는 유전자 112개를 찾았다. 또 상호작용이 강력하게 나타나는 287가지 조합에 대해 추가로 정밀한 상호작용을 측정한 결과를 토대로 유전자 상호작용 지도를 만들었다.

연구진이 개발한 유전자 상호작용 지도는 각 유전자가 얼마나 강력하게 상호작용하는지와 상호작용했을 때 서로 유전자 발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드러난다. 연구진은 특히 이번 연구를 통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 유전자 상호작용에 따른 표현형을 발견하는 데도 성공했다. 사람 몸속 CBL이라는 유전자와 CNN1 유전자가 상호작용하면서 적혈구전구세포를 적혈구로 분화시킨다는 사실을 새로 밝혀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전자끼리의 관계를 나타낸 첫 지도지만 아직 한계도 있다. 유전자 2개가 상호작용한 결과를 토대로 지도를 만들었지만 유전자가 3개 이상 복합적으로 얽혀 작용하거나 특정 표현형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의 영향력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전문가인 조승우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어 유전자 간 상호작용을 알아보기 위해 유전자 발현 산물인 단백질끼리의 상호작용을 관찰했다”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응용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처럼 유전자 단위에서 분석한 성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이 지도를 활용하면 유전자끼리의 상호작용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암이나 치매 같은 질환이 일어나는 원인과 과정도 아주 기초적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타깃을 발굴하는 데도 유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와이즈먼 교수팀은 이 지도의 데이터를 이용해 유전자 간 상호작용을 실험 없이도 예측할 수 있는 머신러닝 알고리즘도 개발했다. 앞으로 훨씬 구체적인 유전자 상호작용 지도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zzung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