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아베 정권 ‘적대적 공생’ 아닌가… 韓日관계보다 훨씬 위험해진 안보 文보다 31세 어린 김정은 더 노회… 美가 韓 안보 손떼는 북-미 협상 전개 愛國 말하려면 나라 지키는 일부터
박제균 논설주간
한일관계는 어떤가. 집안으로 치면 살림에는 관심 없는 무능한 가장(家長)이 아랫집과 약속을 뒤집어서 사이가 틀어진 뒤 송사(訟事)까지 터져 결국 싸움이 났다. 하지만 동네 인심 다 잃어서 편 들어주는 이 하나 없다. 그래도 가장이란 사람은 윗집이 도와주면 단번에 이길 거라고 호언하는데, 윗집에선 ‘공연히 맞을 짓 말라’고 한다. 만만한 가족들만 다그치며 싸움에 뛰어들지 않으면 ‘패륜아’란다. 그 말을 듣는 가족들의 심경은 어떻겠나.
물론 한일관계는 이렇게만 비유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 외교를 경제로 보복하려는 아베 신조 정권의 작태는 문명국에서 해선 안 될 일이다. 굳이 애국심을 들먹이지 않아도 기왕 벌어진 싸움이라면, 특히 그 상대가 일본이라면 이기고 싶은 심정이 우리의 DNA에 박혀 있다.
그런데 외려 ‘친일파’니 ‘매국노’니, 심지어 ‘토착왜구’ 같은 낙인을 찍으며 적전분열(敵前分裂)을 일으키고 있다. 하기야 그 낙인찍기에 앞장섰던 사람을 보란 듯이 다시 중용해 언감생심(焉敢生心) ‘대망론’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애초부터 국론을 모을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정권이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초기에 지금의 반의 반만이라도 움직였다면 갑작스러운 ‘애국심 소환’에 덜 뜨악했을 것이다. 작금의 한일관계를 보면서 문재인-아베 정권이 외교를 정치 제물로 삼아 ‘적대적 공생’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국 믿을 건 정권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양식 있는 국민이 정권이 막 나가지 않도록 감시·견제하고, 여론이 냉정을 되찾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훨씬 더 깊이 걱정하는 건 한일관계나 아베 신조 총리가 아니다. 북쪽의 젊은이다. 문 대통령은 올해 66세, 김정은은 35세다. 하지만 노회(老獪·경험 많고 교활함)하다는 표현은 왠지 문 대통령보다 31년 아래인 김정은에게 잘 들어맞는다.
김정은은 집권 7년여 만에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만들었다. 그 핵을 미국까지 날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가졌다. 군사력이야 게임이 안 되지만, 미국으로 하여금 ‘한 방’을 걱정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협상을 벌였다. 그런데 그 협상의 흐름이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북-미 협상 결과는 미국이 점점 한국 안보에 손을 떼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기야 내가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라고 해도 동맹을 동맹이라고 부르기를 꺼리는 ‘홍길동 동맹’을 선뜻 지켜줄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돈이라도 많이 받아내려는 건 장사꾼 트럼프만의 속내는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더 김정은의 손아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김정은은 안다. 한국만 완벽하게 인질로 잡으면 정권이 생존하고, 잘하면 경제도 살릴 수 있다는 걸. 그런데도 우리의 지도자는 김정은의 선의라는 걸 믿는다. 김정은이 미사일 놀이로 남쪽을 유린해도 9·19 남북군사합의를 깨지 않았다며 우리 스스로의 손발을 묶고 있다. 애국을 말하려거든, 애국은 나라 지키는 일부터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