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주요 재건축·재개발 등 단지들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12일 국토교통부가 분양가 상한제 대상을 기존 ‘관리처분인가’ 단계에서 ‘입주자 모집공고일’로 1~2년 늦추면서 대부분 사업장이 규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행을 일정기간 유보하는 경과규정 없이 10월 주택법 시행령 공포와 동시에 시행하키로 했다.
● 조합 분양가가 일반 분양가보다 높게 될 수도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현재 이주·철거를 진행 중인 사업장이다. 대표적으로 서초구 신반포3차·경남(래미안 원베일리)은 지난해 7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후 올해 3월 이주를 완료하고, 철거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반분양이 가능한 철거 완료·착공 시점은 내년 9월로 예상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분양가 상한제 규제를 피해 40일 안에 분양을 강행할 수도, 악화된 수익성으로 인해 정비사업을 늦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조합 측은 이로 인해 현재 가구당 평균 2억3000만 원 수준인 분담금이 1억 원 가량 이상 증가해 3억5000만 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조합장은 “대부분 20~30년 동안 오래된 아파트에서 버티며 재건축 하나 바라보고 있는 조합원들이라 수억 원의 분담금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며 “일반 분양을 받을 수 있는 현금 부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내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381개 단지 가운데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는 66곳, 6만8406채다. 이 가운데 아직까지 일반분양 승인을 받지 않은 단지 10곳, 3400채(일반분양 기준) 가량이 10월 중 상한제 지역의 첫 대상일 될 전망이다.
이미 관리처분인가 단계에서 정부와 분양가 협의를 마친 단지들은 오락가락 행정으로 또 다시 분양가를 산정해야 한다며 정부에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양보열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조합장은 “분양가 상한제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이미 분양가 협의가 완료된 단지들만이라도 유예를 달라는 게 우리 입장이었는데 전혀 반영이 안됐다”며 “3주 전에 국토부 담당자와 만났을 때 아무것도 결정 난 게 없다더니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꼴”이라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해 11월 조합원 분양가는 3.3㎡당 2000만 원, 일반 분양가는 3000만 원 수준으로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일반 분양가가 3.3㎡당 2000만 원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애초 조합원들의 개발 이익금이 기대된 곳이었지만 오히려 가구당 2000만 원 가량의 분담금을 내야할 처지에 몰렸다.
● 분양가 상한제 시행 전 분양 강행
분양가 상한제 시행 이전에 분양을 강행하겠다는 정비사업장도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상아2차 조합(래미안 라클레시)은 24일 조합원 임시총회를 열고, 애초 계획이었던 후분양 대신에 선분양으로 돌아설 예정이다. 홍승권 상아2차 조합장은 “인근 단지의 시세가 3.3㎡당 6000만~6500만 원 수준인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는 3.3㎡당 4569만 이하를 요구해 선분양이 아닌 후분양을 계획했었다”며 “하지만 후분양을 고집하면 상한제 적용을 받게 돼 이보다도 수익이 악화될 수 있어 차라리 HUG 규제를 받는게 낫다”고 말했다. 상아2차는 다음달 중 본보기집을 열고, 곧바로 분양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일부 정비사업장들은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공사와 협의해 아파트 마감 수준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강남권 조합 측은 “일반 분양가가 확 떨어지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분담금 부담을 가중시키기 않기 위해서는 결국 건설사에 고급 마감 수준을 낮추는 등 사업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입주 후에 가구당 수천만원을 또다시 투입해야 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낭비가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 역시 “낮춰진 분양게 맞춰 일반분양의 주요 마감을 ‘플러스 옵션’으로 전환하는 등 꼼수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윤경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