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업계 이해충돌에 소비자만 골탕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지난해 소비자 편의를 위해 보험료의 카드납부 확대를 추진했지만 여전히 현실은 지지부진하다. 최근 들어 영업 환경이 팍팍해진 신용카드 회사와 생명보험 회사가 이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맞서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는 “소비자 편의를 위해 보험사가 카드 납부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보험사는 “현행 카드 결제 수수료를 유지하면서 카드 납부만 확대하면 보험사의 손해가 커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12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5개 국내 생명보험사 중 보험료 카드납부를 허용하는 곳은 17곳이다. 그러나 카드 납부가 가능한 상품이 극히 제한돼 있고 조건도 까다로워서 카드를 통한 실제 보험료 납입 건수와 금액 실적은 상당히 저조한 편이다. 특히 자산규모가 상위권인 교보생명과 한화생명 등은 아예 카드 납부를 허용하지 않고 삼성생명도 삼성카드 외에는 다른 카드를 받지 않고 있다.
보험료 카드납입은 국회와 금융감독원이 소비자의 결제 편의를 위해 주도해왔다. 매월 정기적으로 내는 보험금의 납부 방식을 소비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금감원도 보험업계의 카드 납부를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8월 보험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보험료의 카드 수납 실적(건수, 규모) 등을 공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보험료 카드 납부는 좀처럼 정착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 생보사는 신용카드로 보험료를 결제하는 고객에게 “자동이체로 납부 방법을 변경하면 상품권을 준다”고 홍보하며 정부 방침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험료 카드 납부 실적이 저조한 것은 카드와 보험업권 간의 갈등 때문이다. 카드사는 보험 가입자가 카드로 보험료를 내게 되면 보험사로부터 추가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카드사들은 올해 대폭 줄어든 가맹점 수수료 수익을 보험료 카드 납부로 만회하겠다는 목표다.
반대로 보험사는 카드 결제 수수료율을 현행대로 1∼2.5%로 유지하면 수수료 부담이 불어나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보험사 관계자는 “자산운용 수익률이 3%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현행 수수료로는 보험사가 손해를 봐야 한다”며 “특히 저축성 보험의 경우 은행 예금을 카드로 내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료 카드 납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당국이 보험사와 카드사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보험료 카드 납부 비중을 전반적으로 확대하면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저축성 보험은 제외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형민 kalssam35@donga.com·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