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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끔씩 오래 보자[2030 세상/김지영]

입력 | 2019-08-13 03:00:00


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

며칠 전 퇴근길 우연히 학교 선배와 마주쳤다. 근 십 년 만에 만나는 익숙한 얼굴에 긴가민가하다 조심스럽게 “저 혹시…” 말을 걸자 저쪽에서도 반색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안부를 묻는 것도 잠시. 금세 침묵이 맴돌았다. 먼저 어색함을 깬 건 선배 쪽이었다. “어, 그래! 연락하고! 언제 밥 한번 먹자.” 우리는 그렇게 멋쩍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자리를 무마했다.

뒤돌아 발길을 재촉하는데 씁쓸한 마음이 일었다. 알고 있었다. 그도 나도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고 ‘밥 한번’ 같이 먹는 일은 더욱이 없을 것이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면 혹시 번호가 바뀌지 않았는지부터 먼저 물었어야 맞았다. ‘언제 밥 한번 먹자’ ‘술 한잔하자’는 으레 그런 것이었다. 진심이 아니어도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예의 인사말.

스무 살, 학급의 울타리를 벗어나 가장 먼저 접한 사회생활은 ‘점심 약속’이었다. 모두가 같은 시간 삼삼오오 모여 같은 메뉴를 먹던 고등학생 때와 달리 모든 것은 약속과 합의에 기반했다. 먼저 제안을 하고 상대가 수락하면 요일과 공강 시간을 맞추고 메뉴를 정했다. 일련의 과정은 때때로 피로감을 주기도 했지만 빽빽하게 채워져 가는 스케줄러를 보면 묘하게 어른이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말하자면 ‘밥 약속’이란 사회인의 언어였다.

그래서인지 함께 성인이 된 친구들은 언제부턴가 ‘밥 한번 먹자’를 인사말처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치기 어린 순정주의자였고, 그런 빈말들을 결벽증적으로 싫어했다. 해서 바로 스케줄러를 꺼내 들고 날짜를 정할 것이 아니라면 되도록 그런 말은 하지 않으려 애썼다. 어느덧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 나는 제법 사회인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어른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던진 무수한 ‘밥 한번’ 중 가능한 한 많은 밥이 외침이 아닌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틈틈이, 뜬금없이, 날짜 잡기를 즐겨 한다. “잘 지내시죠? 언제 시간 되세요?”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특별한 목적 없이) 온전한 선의로 자신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이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용기 낸 한번은 관계에 불씨를 지핀다. 그렇게 끊어질 듯 켜켜이 이어져 온 소중한 인연들이 지금은 참 귀하고 고맙다.

세월은 흐르고 오늘은 늘 바쁘다. 가족조차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버거운 현실 속에서 잦은 만남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갈수록 혼자됨이 편해진다. 주기적인 만남과 안부 인사에 지치고 멀어짐에 대한 죄책감이 짐스러워 스스로 완전하기를 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순수한 관계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자리 잡고 있다.

관계의 깊이가 만남의 빈도와 비례했던가. 매일 만나도 공허한 관계가 있고 가끔 만나도 돌아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선물 같은 인연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아니, 몇 해에 한 번이라도 기쁘게 볼 수 있는 관계. 그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한쪽의 용기와 이어나갈 수 있는 양쪽의 이해. 관계에 지친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글의 모티브가 된 노래 가사로 글을 갈무리하려 한다. ‘우리 가끔씩 오래 보자. 약속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겠지만. (…) 조만간 보자, 자주 보자, 평생 보자, 그런 거 다 의미 없는 것 같고, 가끔씩 오래 보자.’(다이나믹 듀오의 ‘가끔씩 오래 보자’ 중) 자주 홀로 되더라도 가끔씩, 오래 보고 싶다.

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