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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족적 국가 [횡설수설/이진구]

입력 | 2019-08-13 03:00:00


1960년대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스탠리 밀그램은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교사가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했다. 전기충격기는 가짜였고 학생도 실제론 배우였지만 교사 역할에 참여한 일반인들은 이를 몰랐다. 연구자의 지시에 따라 교사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학생 역할을 맡은 배우는 비명을 질렀다. 밀그램은 학생이 죽을 수도 있는 최대치(450V)까지 누를 참가자는 0.1%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는 65%가 눌렀다. 이들은 ‘모든 책임은 연구자가 진다. 당신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에 무감각하게 따랐다.

▷최근 미국 국무부 외교관으로 일하던 척 박(박영철·35)이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고 사임했다. 뉴욕 출신의 한인 2세인 그는 “공짜 주택이나 퇴직연금 같은 직업적인 특전 때문에 한때는 너무나 분명했던 이상에서 멀어지고 양심을 속였다”고 토로했다. 멕시코 영사관 행사에서 미국의 우정과 개방성에 대해 말하는 그 시간에 미국에선 수천 명의 불법체류 청년들이 쫓겨나고 있고, 미국에서는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 대응이 논란이 될 때 리스본 대사관에서 흑인 역사 주간을 열어 축하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3년간 이런 행태에 반발하는 어떤 반(反)트럼프 움직임도 내부에서 보지 못했다”며 이런 미국을 ‘자기만족적 국가(Complacent State)’라고 지칭했다.

▷뉴욕타임스는 인권 탄압 비판을 받아온 불법 이주자 부모와 아이의 격리 수용이 최근 다시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런 ‘비열한 행위’는 이를 돕는 공무원들 때문에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모든 공무원이 그런 건 아니다. 돈 맥갠 백악관 법률고문은 로버트 뮬러 특검을 해임하라는 트럼프 지시에 반발하다 지난해 사임했다. 4월에는 키어스천 닐슨 국토안보장관이 미-멕시코 국경지대 통관항 및 검문소 폐쇄에 반대했지만 트럼프는 받아들이지 않고 해임으로 답했다. 이런 일부 고위직의 저항에 이어 실무자급에서 처음으로 척 박이 나선 것이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일상의 지시를 수행했지만, 결과가 양심에 배치되는 일이 될 때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한다. 하지만 대개는 지시를 이행하는 것일 뿐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밀그램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무리 정의로운 시민들이라 해도, 옳지 않은 권위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들 또한 야만성과 비인간적인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미국이 과연 과거처럼 자유 공정 관용의 가치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