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해변에 상륙해도 이때부터 군대는 고립된다. 계절풍을 이용하는 항해시대에 잠깐만 시간이 지나면 후속이나 지원부대가 올 수 없다. 이제부터 고립된 땅에서 제한된 물자를 가지고 전쟁을 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을 감안하면 13세기 말 쿠빌라이가 고려군까지 동원해서 시도한 일본 상륙작전은 세계사에 길이 남을 대담한 시도였다. 게다가 몽골군은 해전에는 문외한인 종족이었다.
1274년의 침공은 여원 연합군 2만3000명을 동원했다. 1281년의 2차 침공에는 4만 여원 연합군에 함선 900척, 중국군 10만에 함선이 무려 3500척이었다. 게다가 중국군은 급조한 불량 함선을 타고 중국 본토에서 출발해 동중국해를 거쳐 규슈로 오는 긴 항해를 했다.
이 전투에서 고려군은 잘 싸웠다. 몽골군은 명성이 무색하게 적당히 싸웠고, 중국군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수장됐다. 일본이 미운 사람들은 태풍만 아니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모든 실패가 그렇듯이 이 실패의 원인도 절반은 인재다. 결단력 부족, 소극적 태도, 예상외로 강한 일본의 저항 등 여러 오류가 있지만 일본에 대한 정보가 크게 부족했던 게 모든 오류의 시작점이었다. 전쟁에서는 열정과 명분, 욕망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이 지배해야 이긴다. 그런데 우리는 명분을 이성으로 치환하고 벌써 편 가르기부터 하고 있다. 손자병법의 1장이라도 다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