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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부활 조짐에… 아르헨 증시 38% 폭락 ‘패닉’

입력 | 2019-08-14 03:00:00

대선 예비선거서 좌파후보 승리… 페소화 가치도 한때 30% 떨어져
국가부도 위기지수는 98% 급등… 모건스탠리, 투자 ‘비중축소’로 낮춰




11일 아르헨티나 대선 예비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정의당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승리의 ‘V표시’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P 뉴시스

11일 아르헨티나 대선 예비선거에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를 내세운 좌파 후보가 승리했다. 이 여파로 12일 현지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주가는 지난 70년간 세계 94개 주식시장 중 두 번째로 큰 하루 낙폭을 기록했다. 통화 가치와 채권 가격도 급락하는 ‘트리플 약세’가 나타났고 국가 부도 위험도 급증했다.

○ 좌파 재집권 우려에 투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이날 아르헨티나 메르발 지수는 전일 대비 37.9% 낮은 27,530.80에 마감했다. 달러 기준으로 환산하면 48% 하락이다. 1989년 6월 당시 내전 중이던 스리랑카 주가가 하루 만에 60% 이상 폭락한 것을 제외하면 최대 낙폭이다. 페소화 가치도 17% 넘게 급락해 달러당 53페소에 거래되고 있다. 페소화 가치는 이날 외환시장이 열리자마자 한때 30.3% 떨어졌다. 중앙은행이 약 1억500만 달러를 매각하는 시장 개입을 단행해 겨우 낙폭을 줄였다.

국가 부도 위기를 알리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5년 만기 국채 기준)도 전일 대비 98% 급등한 2016bp(베이시스포인트·1bp는 0.01%포인트)다. 수치가 높을수록 부도 위험도 크다. 블룸버그는 “부도 공포가 엄습하자 국내외 투자자가 투매에 나섰다”고 했다. 로이터도 “좌파 정권이 출범하면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60)이 이끈 기업 친화 정책이 뒤집히지 않겠느냐는 투자자 우려가 높다”고 가세했다.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아르헨티나 주식 매수 권고를 ‘중립’에서 ‘비중 축소’로 낮췄다.

○ 현 정부 긴축 정책에 반발


재정 확대, 실업급여 인상, 은퇴자 의약품 무상 지급 등을 주창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정의당 후보(60·전 총리)는 전일 예비선거에서 47.7%를 얻어 마크리 대통령(32.1%)을 앞섰다. 이날 선거는 득표율 1.5% 미만의 군소 후보를 탈락시키기 위한 절차다. 당초 박빙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약 15%포인트 격차가 났다. 둘은 10월 27일 본선에서 재격돌한다.

페르난데스 후보의 러닝메이트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66·2007∼2015년 집권)이다. 고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년 집권)의 부인으로 그가 집권했던 2014년 아르헨티나는 역사상 두 번째 국가 부도를 선언했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 멕시코에 이은 남미 3위 경제대국이지만 최근 경기 침체, 인플레, 빈곤율 상승의 3중고와 씨름하고 있다. 특히 기업가 출신 마크리 대통령도 경제 부문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자 국민들이 포퓰리즘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크리 정권은 지난해 8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은 뒤 나랏빚을 줄이기 위해 연금 개혁, 공교육 보조금 삭감 등을 추진해 반발을 샀다.

○ 중남미 전체를 뒤덮은 포퓰리즘


이번 사태가 이웃 나라로 번질 조짐도 보인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4개국이 포함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유럽연합(EU)이 6월 타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페르난데스 후보는 FTA에 줄곧 반대해 왔다.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 혼란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 체제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베네수엘라, ‘남미 좌파의 거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건재한 브라질 등 남미 주요국에서 포퓰리즘 인기는 여전히 높다. 룰라 전 대통령은 이날 “페르난데스 후보에게 축하 인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임보미 bom@donga.com·최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