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 발언이 담긴 DHC의 자회사 ‘DHC테레비’의 방송 장면. DHC테레비 화면 캡처
강승현 산업2부 기자
일본 화장품 브랜드 DHC는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양국 관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한국에 상륙했다. 클렌징오일 제품이 전무했던 당시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DHC 세안제는 ‘핫한 아이템’이었다. 이후 다양한 국내외 브랜드가 클렌징 제품을 선보이면서 DHC 인기가 좀 시들었지만 2000년대 DHC 제품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이후 DHC는 10여 개국에 진출하며 몸집을 키운 결과 지금은 국내 연간 매출액만 100억 원에 달한다. DHC의 성장 뒤에는 한국 소비자들의 꾸준한 사랑이 있었다.
그런 DHC가 국내 진출 17년 만에 다시금 ‘핫한 브랜드’로 떠오르고 있다. 불을 붙인 건 DHC의 자회사인 ‘DHC테레비’의 유튜브 콘텐츠였다. 이 채널의 한 출연자는 “조센진은 한문을 문자화하지 못했다.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해 지금의 한글이 됐다”는 망언을 했다.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해선 “한국은 원래 바로 뜨거워지고 바로 식는 나라다. 일본은 그냥 조용히 두고 봐야 한다”고 폄하했다. 여기에 요시다 요시아키 DHC 회장의 과거 발언이 더해지면서 DHC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3년 전 그는 DHC의 공식 홈페이지에 “놀라운 숫자의 재일 한국인이 일본에 살고 있다. 하찮은 재일 한국인은 필요 없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글을 올렸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혐한과 역사 왜곡에 불매운동이 일었지만 DHC 본사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소비자 여론을 의식한 올리브영 등 화장품 유통업체가 DHC 제품을 매장에서 퇴출한 다음 날(13일)에도 DHC는 DHC테레비를 통해 “한국인이 하는 짓은 어린아이 같다”며 추가 막말을 이어갔다. 불매 움직임이 거세지자 이날 오후 늦게 한국지사인 DHC코리아는 “미숙한 대처로 실망감을 안겨 드린 부분에 대해 사과한다”며 “DHC코리아 대표와 임직원들은 모두 한국인이며 출연진의 모든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정작 불씨를 지피고 기름까지 부은 일본 본사의 사과나 입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진정성을 떠나 불매운동이 격화되면 고개를 숙이는 척이라도 하는 일반 기업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때 10초에 1개씩 팔렸다는 DHC 클렌징오일 제품에는 ‘미세먼지 98.69% 세정’이라는 홍보문구가 써 있다. DHC가 ‘건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앞에서는 제품을 팔고 돌아서선 특정 국가를 향한 혐오와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이중적인 얼굴부터 당장 버려야 할 것이다.
강승현 산업2부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