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인사파동이 남긴 숙제 기존 서열 무시한 간부 승진… 현 정권 수사했던 검사들은 좌천 인사원칙 무너졌다는 실망감에 윤석열 취임 전후 60여명 줄사표 정권 입맛 따라 줄세우기 우려… 대통령 인사권 행사 재논의할 때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오른쪽)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다. 검사들의 줄사표 소동으로 이어진 지난달 검찰 인사는 조 후보자 임명을 앞둔 ‘밑그림’의 성격이 짙다. 뉴시스
전성철 논설위원
윤 총장 말대로 검찰총장이 바뀌는 해에는 검사장들이 무더기로 퇴직하며 전체 사직자 수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문무일 전 총장과 전임자 김수남 전 총장이 사법연수원 두 기수 차이인 데 비해, 윤 총장과 문 전 총장은 다섯 기수 차이다. 후배에게 밀리면 사표를 내는 분위기가 강한 검찰 관행을 감안하면, 사표를 낸 검사 수가 많은 것은 얼마든지 설명 가능하다. 그런데도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에 대한 불만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높다.
○ “靑의 검찰 주류 교체 의도”
검사는 정기적으로 직속 상사의 복무평가 외에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 그룹의 평가 △사법연수원 동기 그룹의 평가 △후배 검사의 상향식 평가를 받는다. 이를 종합해 동기 내 등수가 매겨진다. 사법연수원 32기 부장검사가 50명이라면 동률 없이 1등부터 50등까지 서열이 정해진다.
동기 내 서열이 낮으면 승진을 하거나 좋은 보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오랜 룰이었다. 가령 인사권자가 마음에 드는 검사를 검사장에 승진시키려고 해도 누적된 평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법무부가 반대를 했다. 한 기수에서 검사장 승진 대상자가 10명이라면 성적이 조금 떨어지는 15등을 발탁할 수는 있어도 아예 40등짜리를 승진시키기는 어려웠다.
검사들이 ‘줄사표’를 낸 것은 이런 원칙이 무너졌다고 느낀 탓이 크다. 한 부장검사는 “원하던 자리에 못 갈 수는 있다. 하지만 나보다 능력이나 실적에서 한참 뒤처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요직에 가는 걸 보니 ‘이런 대접을 받으며 남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 “檢을 대통령 휘하 행정부로 보는 인식”
검사직에 대한 이런 인식은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과는 차이가 크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수차례 공개적으로 “검찰은 행정부의 일원”이라고 강조했다. 사법 업무에 종사한다고 해도 검찰은 행정부에 속해 있으므로 대통령의 정책과 철학을 따라야 하며, 이를 위해 인사권은 포기할 수 없는 통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현 정부 출범 후 요직을 맡아 성과를 낸 검사나 인사권자가 잘 아는 검사들이 중용된 것은 ‘편 가르기’가 아니라 문 대통령의 인사 철학을 관철시킨 일로 보일 수 있다.
김인회 인하대 교수와 공동 집필한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에는 문 대통령의 생각이 잘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책에서 검찰개혁에 부정적이었던 송광수 검찰총장의 임명 등 잘못된 인사를 검찰개혁이 실패한 이유로 꼽았다. 대통령과 철학이 맞지 않는 사람을 쓰면 검찰개혁에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인사는 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앉혀 검찰개혁을 마무리 지으려는 문 대통령의 ‘큰 그림’으로 봐야 한다.
○ 현 정권 수사 검사 ‘인사 보복’ 논란
정권 실세를 겨냥한 수사를 했던 검사들이 ‘보복성 인사’를 당했는지도 검사들과 인사권자의 생각이 크게 엇갈리는 대목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동부지검 간부들이 줄사표를 내고 ‘손혜원 투기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남부지검장과 차장검사가 승진자 명단에서 빠진 일을 청와대의 복수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검사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이번 인사의 유일한 기준은 정권 입장에서 ‘내 편’이냐, ‘남의 편’이냐뿐”이라는 비판이 공공연히 나온다.
○ 공안통 몰락도 오비이락인가
굵직한 선거, 대공, 노동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검사장 승진자 명단에 단 한 명도 포함되지 못하며 홀대를 받은 일도 논란이다. 공안통 검사들은 그 배경으로 청와대의 공안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목한다.
문 대통령은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공안부가 사상·안보 분야를 다룬다는 특수성을 내세워 세력을 키웠고, 그 연장선에서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강화했다고 비판했다. 검찰개혁이 필요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사실상 공안부를 지목한 셈이다. 일선 검찰청의 한 공안부 검사는 “통합진보당 사건을 두고 ‘기소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던 조국 전 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됐다. 우리가 영전하면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반면 청와대는 이번 인사에서 공안통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 예로 대공수사 최고 전문가인 한 차장검사는 막판까지 검사장 승진 대상으로 검토됐지만 공안부 업무와 무관한 이유로 탈락했다는 것이다. 공안검사 출신인 박형철 대통령반부패비서관도 옛 동료들을 열심히 측면 지원했다는 후문이다.
인사권자의 진심이 무엇이었든, 검찰 내에서는 공안부 근무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검찰청인 서울남부지검은 최근 평검사 인사에서 공안부 지원자가 한 명도 없어서 애를 먹었다.
○ 검찰의 정치적 중립 지켜질까
이번 인사에서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정한 검찰개혁의 방향성에 맞춰 기존 인사 틀을 깼다는 것이다. 연수원 기수와 서열, 전공에 따라 인사를 받아온 검사들로서는 이번 인사가 억울하고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검사 인사권은 엄연히 대통령의 권한이므로 과거의 룰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청와대를 비난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인사에서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내년 총선에서 선거사범 수사, 기소를 담당할 공안라인까지 적폐청산 수사팀 출신의 특수통들로 채워지면서 “검사들을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줄 세운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 됐다는 대목이다. 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정의롭게 보이려 노력하는 일도 중요하다.
대규모 사직 사태를 초래한 이번 인사파동은 지나가 버린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남은 임기 동안 검찰을 어떻게 다룰지, 검찰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가늠할 시금석인 동시에 이미 우려스러운 형태의 디딤돌이 놓인 것이다. 윤 총장은 이번 검찰 인사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형사 법 집행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고 취임식에서 자신이 한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검사 인사권을 지금처럼 대통령이 행사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도 불을 지펴야 한다. 군(軍)에 대한 문민통제가 필요하듯, 검찰도 선출된 권력으로부터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대통령이 검찰을 통제하는 핵심 수단인 인사권에 견제장치가 없는 점은 문제다.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이 검사 인사를 협의한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이는 대통령이 검찰 인사를 잘못하면 제동을 걸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서 핵심인 검사 인사 문제를 어떻게 할지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검찰개혁의 큰 틀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전성철 논설위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