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에서 안저검사를 받고 있는 모습. 안저검사는 눈 안쪽 망막 상태와 시신경 이상 유무를 한꺼번에 알 수 있다. 동아일보DB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대한안과학회는 황반변성뿐만 아니라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당뇨망막병증, 녹내장 같은 질환들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모두 망막에 손상을 줘 실명을 일으키는 대표적 질환이다. 과거에 실명을 부르는 대표질환으로 백내장이나 각막 혼탁을 꼽았지만 치료가 가능해지면서 눈 질환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문제는 황반변성, 당뇨망막병증질환, 녹내장 등은 늦게 발견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빨리 발견하면 적어도 실명을 막는 치료제가 있다.
일반인은 눈 검사라고 하면 시력검사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시력검사로 질환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치료시기를 놓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력이 떨어지기 전에 안저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눈의 압력이 높아져 생기는 녹내장은 안압검사를 받으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 가운데 안압은 정상이면서 녹내장이 생기는 환자가 무려 90%다. 녹내장 환자 10명 중 9명은 조기 발견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녹내장 조기 발견을 위해서도 안저검사를 받아야 한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질병 패러다임은 이처럼 바뀌고 있지만 국가검진 항목은 기존 정해놓은 그대로다. 안과 질환 말고도 최근에 늘고 있는 질환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COPD는 폐에 만성적으로 생기는 염증에 의해 기도가 좁아지는 병으로 기침 가래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COPD는 사망률이 세계적으로 3위, 국내 7위일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다. 국내의 COPD 환자는 약 330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는 사람은 이 중 5%에 불과하다. COPD도 조기 진단을 통해 증상 악화를 막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하지만 초기 증상이 거의 없다 보니 상당수가 기침이나 호흡곤란이 심해져야 병원을 찾는다. 안타깝게도 이때는 말기일 확률이 높아 치료가 힘들다.
대한안과학회와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는 급증하고 있지만 치료제는 없는 질환의 조기 발견을 위한 해결책을 3, 4년 전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애전환기 건강검진(만 40세와 만 66세 대상 국가건강검진)을 하고 있다. 두 학회는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에 안저검사와 폐 기능 검사를 포함하기만 해도 이들 질환을 조기 발견해 많은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아무런 증상이 없는 사람에게 이 같은 질환을 조기 검사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유보적이다. 그렇지만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증상이 악화된 뒤에야 질환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조기 발견해서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안저검사를 국가검진 항목으로 했을 때의 비용은 약 40억 원, 폐 기능 검사는 약 70억 원이 든다고 한다. 2016년 황반변성에 대한 건강보험급여로 930억 원을 지출했고 녹내장은 1943억 원을 사용했다. 한정된 건강보험재정으로는 필요한 사람에게 제한적으로 급여를 줄 수밖에 없다. 과연 무엇이 더 효과적인 질병 예방과 치료인지 국민건강의 관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