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3> 알바니아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
이스마일 카다레는 독재와 폭력으로 얼룩진 조국 알바니아의 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ilfriuliveneziagiulia 제공
그는 1970년대 초 알바니아의 최고 명문인 티라나대에서 현대문학을 강의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밖에 접하지 못했던 당시 학생들에게 그의 강의는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한다. 퇴폐적이라고 낙인찍힌 서구 작가를 비판하기 위해 개설된 강의였지만, 그의 강의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서구 문학에 대한 갈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과 타협하지 않았다. 서슬 퍼런 시국 탓에 직접적인 현실 비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택한 방식은 신화와 전설, 환상과 전통을 통해 우회적으로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카다레는 당국의 감시에도 가혹한 탄압은 받지 않았다. 이는 유명 작가를 처벌했을 때 쏟아질 국제 여론의 비난을 호자 정권이 꺼렸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작품 활동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스만튀르크 제국 시대의 이스탄불을 무대로 전체주의 국가의 폐해를 폭로한 ‘꿈의 궁전’(1981년)은 출판 직후 판매 금지를 당했다.
장편소설 20여 권, 단편집과 에세이, 시집 등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알바니아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체제 비판적 작품이지만 그의 작품은 따뜻함과 성숙함, 인간적인 깊이를 담고 있다. 이는 숙명과도 같은 조국에 대한 연민과 사랑, 역사의식이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작가의 유년 시절과 공산당 집권 초기 상황을 회고한 ‘돌의 연대기’(1971년)와 ‘광기의 풍토’(2004년), 호메로스의 맥을 잇는 신화와 서사시를 추적한 ‘H서류’(1981년), 알바니아 북부 고원지대 주민들의 정신과 행동을 통제한 관습법으로 인한 비극을 다룬 ‘부서진 사월’(1980년) 등은 알바니아의 전통을 경험하게 해준다.
○ 이스마일 카다레는…
1936년 알바니아에서 태어나 티라나대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했다. 고등학생 때 시집 ‘서정시’를 출간하며 시인으로 데뷔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막심 고리키 문학 연구소에서 수학한 뒤 귀국해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으로 알바니아의 정치 현실을 알리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이후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 등을 자유롭게 변주해 독재 체제 아래 있던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그려냈다. 1990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2005년 제1회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유석호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