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근 CJ 오쇼핑 쇼호스트가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CJ 오쇼핑 본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CJ ENM의 홈쇼핑채널 ‘CJ오쇼핑’ 쇼호스트 김익근씨(33)에게도 질문지를 미리 보내줬다. 그러나 그는 ‘답변 달린 질문지’ 없이 ‘빈 손’으로 인터뷰 장소에 등장했다. 질문지를 깜빡했거나 인터뷰를 가볍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리 보내준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머릿속에 입력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쇼호스트다운 자신감이었다. 홈쇼핑 방송 판매자·진행자인 쇼호스트는 ‘대본’에 의존하지 않는다. 제품 핵심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한 뒤 갖은 돌발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며 잠재적 구매자인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야 한다. 제품을 실시간으로 판매하는 홈쇼핑 방송을 흔히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유하는데 김씨는 그 최전선에서 승전보를 울리는 쇼호스트다.
◇‘공기청정기’ 판매 방송 때 서장훈 얘기를 꺼낸 까닭은?
여장을 하고 홈쇼핑 방송 중인 김익근씨(오른쪽) © News1
김씨가 생각하는 “쇼호스트의 기본 중 기본”이다. 어렵게 말할 필요 없다. 어렵게 설명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제품설명서를 그대로 읽듯이 방송했다간 시청자(소비자)는 금세 지루함을 느끼고 채널을 돌릴 것이다. ‘쉽고 친절하고 재밌게’는 마음 변하기 일쑤인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아 지갑을 열게 하는 ‘설득’의 기술이다.
“가령 공기청정기 판매 방송을 한다고 해보죠. 분출구에서 바깥으로 7.5미터까지 깨끗한 공기를 뿜어내는 제품이라고 할 때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저는 신장 2.7미터에 달하늘 방송인 서장훈씨(옛 농구선수)를 빗대 설명했어요. 공기 청정 분출 범위가 ‘서장훈씨 3명 수준’이라고요. 서장훈씨 3명이 머리 위로 잇대어 서면 총 길이가 8.1미터가 되는데, 이럴 경우 제품의 공기청정 범위인 7.5미터에 근접해지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죠.”
지난 2017년 김씨는 기어이 ‘사고’를 쳤다. 회사에 손실을 안긴 게 아니라 이른바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그해 5월7일 오후 10시45분부터 65분간 방영된 홈쇼핑에서 동료 쇼호스트와 함께 LG전자 휘센 에어컨을 30억원어치 팔았다. 분당 판매 매출액이 무려 4600만원이다. 지난 1995년 CJ오쇼핑 창립 후 에어컨 부문 최대 매출 기록이다.
김씨는 홈쇼핑 세계가 익숙하지 않은 기자 입장에서 그 비결을 ‘쉽고 친절하고 재밌게’ 설명해줬다.
“기자님도 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하고, 어떤 대답이 중요한지 ‘감’이 오잖아요. 쇼호스트도 마찬가지예요. 수많은 제품의 수많은 정보 중에 소비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선별하고선 그 부분을 강조해 소개해야 합니다. 제품 공부는 물론 방송 ‘애드리브’도 연구해야 해요. 저는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 진행자 윤종신씨를 보며 방송 공부를 많이 해요. 윤종씨는 소위 ‘깐죽댄다’는 이미지지만 어떤 주제도 잘 소화할 만큼 순발력이 돋보이고 사람들에게 호감도 사잖아요.”
이어 그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쇼호스트는 자신이 방송한 상품을 사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며 “저만 해도 방송에서 선보였던 TV·에어컨·공기청정기·정수기·로봇청소기 등을 구매해 집에 한가득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그우먼 오나미씨와 함께 ‘펀샵 TV’도 진행하고 있다. 펀샵 TV는 녹화 방송으로 제작되는 ‘티커머스(방송과 전자상거래가 결합된 형태)’ 채널이다. CJ오쇼핑이 톡톡 튀는 콘셉트로 젊은 고객층을 겨냥해 지난 6월 첫 선을 보인 뒤 아미로 LED 거울 등 기획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CJ오쇼핑 관계자는 “기존의 정형화된 홈쇼핑과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기발하고 톡톡 튀는 진행력을 갖춘 김익근씨가 해당 콘텐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MBC 특채 코미디언 출신…“‘내 길이 아니다’는 깨달음도 빨랐어요”
김익근 CJ 오쇼핑 쇼호스트. © News1
“저는 ‘말’로 웃기고 분위기를 띄워 ‘진행’하는 것을 선호했어요. 그러나 제가 직접 경험해 깨달은 코미디란 ‘연기’에 더 가까웠어요. 저는 ‘진행’이 하고 싶었던 것이지, ‘연기’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남들보다 사회생활이 빨랐던 만큼 ‘코미디는 내 길이 아니다’는 깨달음도 빨랐어요.”
김씨와의 인터뷰는 실시간 판매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홈쇼핑처럼 역동적이고 박진감 있게 진행됐다. 명쾌한 소리를 내며 현금을 새는 인출기처럼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하던 그는 ‘한 가지 질문’을 받고선 고심을 거듭했다. “쇼호스트를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질문이었다. 그는 “인터뷰 끝날 무렵 답을 해도 되겠느냐”며 “생각할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인터뷰 막바지에 답을 내놨다. “쇼호스트는 방송의 꽃이다.” 좀 더 설명을 부탁했더니 “방송만이 주는 짜릿함과 아찔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고 피드백(반응)도 실시간으로 확인된다. 이 매력에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쇼호스트 생활은 때론 강행군을 감수해야 해요. 오전 6시에 출근해 그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일하기도 했어요. 한번에 2시간 40분짜리 방송도 해봤죠. 머리가 하얘지고 입에선 단내가 진동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에어(’방송 중‘이라는 의미)’ 표시만 보면 다시 힘이 솟구쳐요.”
인터뷰 전엔 그가 코미디언으로 성공할 자신이 없어 ‘차선책’으로 쇼호스트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기자의 착각이었다. 그에게 쇼호스트란 다른 대안 없는 ‘최선책’이었다. 김씨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시대에 이처럼 복 받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