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관 안 챙긴 지 근 반 년, / 물과 구름 그윽한 곳에서 꽃을 안고 잠드네.
평생 간직했던 벼슬 없는 즐거움, / 유월 한더위에도 세상없이 통쾌하다.
(不着衣冠近半年, 水雲深處抱花眠. 平生自想無冠樂, 第一驕人六月天.·불착의관근반년, 수운심처포화면. 평생자상무관락, 제일교인유월천.)-‘더위를 식히며(소하시·銷夏詩)’(원매·袁枚·1716~1797)
관직을 버린 시인은 남경 인근의 소창산(小倉山) 자락에 위치한 폐원(廢園)을 사들여 자기 취향에 맞는 공간으로 가꾸었고 수원(隨園)이라 이름 붙였다. 관료 세계의 명리(名利) 다툼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꽃을 안고 뒹굴었지만’ 그렇다고 고답적인 은둔 생활을 고집하지는 않은 듯하다. 수원에는 시인의 제자와 친구, 소문을 들고 찾아온 인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사대부로서는 드물게 그는 제법 상술도 뛰어나 수원 연회에서 자주 미희(美姬)의 가무를 연출했고, ‘수원전집’ ‘수원식단(隨園食單)’ 등 책도 판매했다. 수원식단은 미식가였던 시인이 요리 비법과 금기 사항을 정밀하게 기술해 놓은 이채로운 요리 전문서다.
시의 진솔한 감정과 개성미를 중시했던 원매, 동시대 문인들의 복고주의적 폐단에 대해 “죽은 용은 산 쥐만 못하다”거나 “모란 작약이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꺾어놓으면 들풀이나 아욱만 못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