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6집 ‘We Are Not Your Kind’를 낸 미국의 헤비메탈 밴드 ‘슬립낫’. 가면 뒤 진짜 얼굴은 꽤 선량하다. 슬립낫 페이스북
3일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감옥에서 73년형을 살던 마약밀매범이 기상천외한 탈주극을 시도한 것. 면회 온 19세 딸을 옥에 두고 자신이 딸 행세를 해 빠져나오려던 계획에 필수품은 역시 실리콘 가면이었다. 그의 긴장한 모습에 교도관이 의심을 품지 않았다면 탈옥에 성공할 뻔했다. 실패 뒤 독방에 투옥된 이튿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면 탈옥’도 안 먹힌다면 탈출이란 이번 생에 ‘미션 임파서블’이라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임희윤 기자
#3. 가면을 쓰면 악상이라도 나오는 걸까. 스토리만큼은 확실히 떠오르는 모양이다. 스웨덴 록 밴드 ‘고스트’의 리더 토비아스 포르게는 가면으로 정체성을 두 번 바꿨다. 그가 자임한 첫 번째 역할은 ‘파파 에메리투스’. 해골 가면 위로 교황이 쓰는 주케토 모자를 쓴 악마의 ‘안티-교황’이다. 지난해 4집을 내면서는 스스로를 추기경으로 강등했다. ‘카디널 코피아’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맡은 것. 트위터 게시물도 고위 성직자의 칙령처럼 집필한다. 공연장 객석에는 ‘파파’나 ‘카디널’을 모방한 코스프레 성직자들이 판을 친다.
#4. 신비의 존재, 가면 음악가들을 실제로 만나본 적 있다. 일본의 인기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 멤버인 ‘DJ 러브’. 피에로 가면과 가발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다니는 이다. 2016년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가면을 벗지 않았다. 7월 말이었고 더위를 잘 타는지 금세 옷이 땀에 흠뻑 젖었는데도…. 러브는 다행히 낙천적이었다. 공항 입국장에서 나올 때 열성 팬들의 사인 요청 공세를 피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다른 멤버들이 팬들에게 열심히 화답하는 동안 민낯의 러브는 유유히 스태프에 섞여 아이스커피나 한 잔 마시러 가는 거다.
#5. 2015년 3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3월의 텍사스 기온은 곧 7월의 서울 기온이었다. 세계 최대의 대중음악 박람회인 SXSW 행사장에 한국 DJ 히치하이커(최진우)가 등장했다. 온몸을 은박으로 감싸고 로봇으로 행세를 하는 게 그의 패션 콘셉트다. 행사장을 한 바퀴 돌며 전 세계 음악 관계자들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겠다는 게 이날 그의 각오였다. 그러나 퍼레이드는 이내 고난극으로 바뀌었다.
“오빠, 괜찮아? 잠깐 쉬었다 갈래?”
#6. 미국 헤비메탈 밴드 ‘슬립낫’이 9일, 6집을 냈다. 공포영화 화면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 멤버 제각각 엽기적인 가면으로 유명한 팀. 5년 만의 컴백인 만큼, 업그레이드된 가면들이 음악보다 먼저 화제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6집은 의심의 여지없는 걸작”이라고 썼다. 여름이 아직 한창이다. 납량의 계절 말이다.
임희윤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