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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절차법 비웃는 건설노조[현장에서/송혜미]

입력 | 2019-08-16 03:00:00


지난달 수도권의 한 공사장 앞에서 노조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업체 폐쇄회로(CC)TV 화면 캡처

“노조의 ‘채용 갑질’을 막을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무척 기대했는데….”

12일 서울의 한 공사현장에서 만난 A건설업체 관계자는 말끝을 흐렸다. 이 업체는 지난달 31일 수도권의 초등학교 신축 공사를 포기했다. 원청업체와 하청계약을 맺은 공사였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건설노조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다.

건설노조는 이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100명 중 50명을 민노총 조합원으로 써달라며 매일 현장 출입구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이 관계자는 “노조가 현장에 개입하면 공사기일을 못 맞추기 일쑤”라며 “노조 요구를 받아주느니 차라리 공사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채용에 관한 부당한 청탁과 압력을 금지하는 개정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이 시행된 지 16일로 한 달이다. 지난달 17일 개정 채용절차법이 시행될 때만 해도 건설업계에서는 자기 노조원을 채용하라는 노조의 ‘몽니’를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도 당시 “건설현장의 채용 강요 행위에 대해 법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노조의 채용 강요 행위가 여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개정 채용절차법은 법을 위반해 채용에 관한 압력을 행사하면 최대 3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런 채용 압력이 물리적인 폭력을 동원하거나, 근로자나 관계자의 현장 출입을 막는 등의 불법집회가 아닌 한 위법으로 판단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노조는 이 같은 법망의 ‘틈새’를 활용해 채용을 압박한다. ‘불법 외국인근로자 고용 규탄’ 명분으로 현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현장에서 이미 일하는 조합원들은 준법투쟁이라며 사실상 태업을 하기도 한다.

개정 채용절차법이 제몫을 못 하는 데에는 건설업계가 노조의 후환이 두려워 신고를 꺼리는 점도 일조한다. 고용부에 따르면 9일까지 접수된 채용절차법 위반 신고 24건 중 건설노조의 채용 강요와 관련된 것은 1건이다.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가 수그러들지 않은 현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적다. A업체 역시 건설노조를 신고하지 않았다.

광복절 전날인 14일에도 건설노조는 이 수도권 초등학교 신축 공사현장 앞에서 근로자들의 출입을 사실상 감시했다. 이들은 외국인 근로자 불법 고용을 감시한다며 출입 근로자에게 신분증을 꺼내 보이라고 했다. 이들 눈치를 보는 공사업체는 제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비조합원 근로자들은 줄을 서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일터로 들어섰다.

건설노조가 진짜 근로자를 위한다면 비조합원 근로자를 사지로 내모는 채용 갑질을 그만해야 한다. 정부도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같은 행태에 더 엄중히 대처해야 개정 채용절차법의 취지를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송혜미 정책사회부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