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문화재’라는 용어부터 불편한 구석이 있다. 용어에는 그 대상의 성격과 정체성이 함축돼 있다. 1949년 일본 참의원에서 일본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면서 문화재라는 법률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광복 이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본 용어를 그대로 따라 했고 문화재보호법이라는 법 이름까지 갖다 썼다. 우리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조선시대까지 널리 쓰였던 ‘고적(古蹟)’과 같은 우리말도 있다. 순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냈던 유본예는 서울의 고사를 소개한 책 ‘한경지략(漢京識略)’에서 당시의 관점에서 옛 유적을 고적이라 했다.
창덕궁에 희정당과 대조전이 있다. 두 전각 모두 1985년 보물로 지정됐다. 각각 임금과 왕비의 거처로 궁궐의 가장 핵심적인 전각이어서 지정된 듯하다. 그러나 두 전각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원래의 전각은 1917년 화재로 불타버렸다. 현재의 희정당과 대조전은 당시 조선왕실의 살림을 관장하던 이왕직이 조선총독부와 협의해 본래의 모습을 무시하고 새로 지은 것이다. 동궐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옛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이왕직은 일본왕실 소속 궁내부 기관이었다.
2000년대 초에 도입한 ‘등록문화재’ 제도는 어떤가. 일본은 1990년대에 경제침체로 부동산 거품이 걷히면서 은행 등 기업이 소유하던 개항기 건축물들이 개발업자의 손에 넘어가 사라지는 일이 흔했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그 대책으로 마련한 장치가 일본의 등록문화재 제도다. 우리는 일본 등록문화재 제도를 그대로 갖다 쓰고 있다. 이름은 물론이고 등록된 건축물에 네모난 동판을 달아주는 것까지 일본 제도 그대로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일본이 도발한 경제전쟁으로 온 국민이 ‘극일’을 다짐하고 있는 지금이다. 일본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야 우리의 정체성은 물론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우리의 문화와 역사, 정체성이 내재된 ‘우리 옛것’을 지키는 일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