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100년 만의 대전환 과거 경영방식 못 버린 한국 경제, 韓日갈등 아니어도 이미 위기 직면 과감한 자기파괴와 근본적 리셋 필요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역사에는 간헐적으로 불연속성이 발생하는데 지금처럼 한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되는 전환기가 그런 순간이다. 다양한 대안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기로이며 이때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 그런데 우리 리더들 중 현재의 역사적 특수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우려된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갈림길은 대기업과 벤처 간 선택이나 성장과 복지의 대립이 아니다.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 자체의 역사적 대전환이 핵심이다.
대량생산 중심의 산업사회는 19세기 후반 생산단계들을 내부로 통합한 형태의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경영사에서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기업의 보이는 손’이 대체한 것으로 평가하는데, 전대미문의 양적 효율성 증대를 통해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미국과 일본의 대기업들이 대부분 이때 탄생했다. 한국에 현대적 기업경영이 등장한 것은 한 세기 후인 1960년대 초였다. 다른 후발국들은 선진국의 추격을 포기하고 싼 노동력으로 원자재를 공급하는 종속적 위치를 선택한 반면, 우리는 빨리 선진국을 따라잡는 ‘빠른 추격자’ 전략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한국형 기업경영이다. 조직적으로는 강력한 리더를 중심으로 한 상명하복 질서를 강조했고, 전략적으로는 신속한 규모 성장을 추구했으며, 문화적으로는 일사불란함을 강조했다. 전근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 빠른 추격의 실행에는 최고의 모델이었고 그 결과가 바로 한강의 기적이다.
규모의 경제로 우위를 방어하던 과거와 달리 새 경제는 새 경쟁우위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상시 창조적 혁신’이 게임의 규칙이다. 이는 특히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데, 최초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퍼스트 무버가 독점하는 승자독식 시장이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경영은 빠른 추격자에 최적화돼 창조적 퍼스트 무버로 변신하지 못하고 있다. 벤처가 대안으로 강조되지만 세계 최대 기업인 아마존이나 구글에서 보듯 규모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가치 창출과 경쟁의 방식 자체가 다른 것이다.
과거 기업들은 양적 효율성을 위해 규모 성장을 추구했으나 새 기업들은 창조적 혁신을 추구한다. 직원 20만 명의 코닥을 무너뜨린 신생 기업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을 페이스북이 인수할 때 직원이 단 13명이었다. 과거에는 이윤 극대화가 기업의 목적이었으나 이제는 고객과 시장 가치가 목적이고 이윤은 부산물로 간주된다. 아마존이나 구글의 기업 가치는 천문학적인데 이윤은 그리 크지 않으며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심지어 “이윤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형 경영은 과거에 발목 잡혀 있다. 성공 방정식이던 한국형 기업경영이 이제는 성공의 덫이 된 것이다.
위기일수록 강점에 선택과 집중을 하라고 한다. 평소에는 맞지만 전환기에는 정반대다. 패러다임 전환은 오히려 기존 강점을 스스로 파괴하고 새로운 강점을 창조하는 근본적 리셋, 즉 창조적 파괴를 요구한다. 지금 우리는 익숙한 강점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리셋할 것인가.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