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이는 비단 한국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나라의 독립을 위한 운동이라기보다는 전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혁명이었습니다. 루이 14세(1638∼1715)가 완성한 절대주의 신권왕정(神權王政)을 통해 ‘짐이 곧 국가’라는 신념은 루이 16세(1754∼1793)까지 이어졌습니다. 왕이 군림하는 동안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졌죠. 아이러니하게도 루이 16세는 미국 독립혁명을 지원한 군사비 때문에 재정 궁핍에 빠지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이러한 절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에는 ‘상퀼로트(Sans-Culotte)’라는 패션이 있었습니다. 귀족의 화려한 의상 중에 타이츠를 입은 듯 딱 맞고 앙증맞은 길이의 반바지인 ‘퀼로트’와는 대별되는, 혁명군이 입은 헐렁하고 긴 평상복 바지가 바로 상퀼로트입니다. 이에 혁명군은 스스로를 상퀼로트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 패션은 왕정으로부터의 독립, 곧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게 됐습니다.
예는 또 있습니다. 바로 체 게바라(1928∼1967)입니다. 체 게바라는 그가 혐오했던 자본주의의 미국에서조차 가장 인기 있는 인물로 다양하게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을 프린트한 티셔츠가 팔리고, 체 게바라 평전은 식지 않는 인기의 베스트셀러이며 그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할리우드에서 제작됐죠. 그는 어떻게 디지털 시대에도 남을 수 있는 시대적 아이콘이 되었을까요? 안락한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한 그의 신념, 그리고 남미 민중의 독립을 원한 그의 이상이었겠죠. 하지만 그 무형의 이미지를 살아 있는 아이콘으로 만든 유형의 이미지는 바로 베레모 패션입니다. 그의 신념과 이상을 담은 체 게바라의 베레모 패션은 곧 저항의 이미지, 기성과 타협하지 않는 이미지, 그리고 본인은 할 수 없으나 체 게바라를 닮고 싶은 욕망의 이미지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독립 패션’은 역사적으로 늘 존재해 왔습니다.
요즘 한일(韓日) 경제전쟁이 이슈입니다. 일본의 한 제조유통일괄형(SPA) 패션 브랜드도 이 전쟁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한국의 독립적인 SPA 브랜드가 하나쯤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된다면 마음껏 “독립 패션 만세”를 외쳐 보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