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잇단 악재뒤… 요즘 바이오업계
최근 국회에서 ‘첨단바이오법’이 통과되면서 바이오 신약 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바이오 신약 임상 건수는 2011년 485건에서 지난해 648건으로 33.6% 늘었다. 사진은 유한양행 신약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신약 물질을 테스트하는 모습. 동아일보DB
한국 제약·바이오업계가 최근 사면초가에 빠졌다. 시스템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와 함께 정부의 3대 중점 육성 산업으로 선정될 만큼 장밋빛 전망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최근 잇따른 임상 실패로 기술력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성장 가능성에 의문 부호가 붙은 것이다. 앞서 6월 바이오벤처기업 에이치엘비도 경구용 항암제 ‘리보세라닙’의 세 번째 글로벌 임상 결과가 목표치에 미달했다고 밝혔다.
첨단바이오법의 목표는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바이오업계는 평균 10년 이상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이 이 법이 시행되면 3, 4년가량 단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희귀·난치병 환자에게 줄기세포 치료제를 임상연구 목적으로 시술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이번 법 제정을 통해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제약바이오업계의 국제경쟁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면에 조건부 허가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품이 환자에게 투여돼 ‘제2의 인보사 사태’가 생길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 조건부 허가를 통해 판매되는 다른 의약품의 부작용 신고가 적지 않다는 점도 이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0∼2016년 세 번째 임상시험을 앞두고 조건부 허가된 약의 부작용 보고건수는 1529건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희귀난치질환자의 신약 처방 기회를 늘리고 바이오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기 위해선 첨단바이오법 시행을 앞둔 향후 1년간 시행령 등을 현실에 맞게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신약 심사와 허가 절차를 간소화했다가 인보사 사태 같은 제약업체의 도덕적 해이를 걸러내지 못하거나 조건부 심사 신약의 부작용이 속출할 경우 바이오산업이 치명상을 또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약의 완성도를 높이도록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전무는 “신약의 연구개발 단계에서는 과학적 데이터로 효과를 따지지만 임상 과정에서는 환자의 안전성을 우선시해야 한다”며 “바이오의약품은 생산 과정에서 변질되거나 오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안전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결정하는 식약처 약사심의위원회의 의사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보사가 허가되는 과정에서도 당초 약의 효용성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위원회가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판매가 가능해졌다. 이 과정에서 심의위원들이 교체돼 제약사 입맛에 맞는 심의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또 신약 개발의 신속 심사가 가능해진 만큼 환자 안전 관리 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보사를 투여한 병원 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투여 환자 명단 제출을 거부하고 있지만 명단 공개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인보사 투여 환자의 장기 추적 조사를 진행할 임상시험수탁기관 선정도 코오롱생명과학에 맡긴 상태다. 최종 결과의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준현 대표는 “국내 바이오 제약사들이 해외 임상에서 번번이 실패하는 것은 신약의 효용과 안전성이 기준에 못 미친다는 뜻”이라며 “국내 신약 허가 과정을 까다롭게 해 해외 시장에서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약 개발에 많은 난관이 존재하는 만큼 ‘대박’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바이오의약품이 미래 먹거리로 키워야 할 분야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우리 기술력과 투자 규모가 아직 글로벌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바이오의약 산업의 생산 규모는 3조8501억 원으로 올해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 추산치 2660억 달러(약 323조 원)의 약 1%에 그쳤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99년 SK케미칼이 항암제 ‘선플라주’를 개발한 이후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은 총 30개다. 이 가운데 현재 판매 중인 제품은 23개, 100억 원 이상 누적 매출을 올린 제품은 5개에 불과하다. 해외 진출 성과가 미미해 대부분 내수용에 그쳤기 때문이다. 기술력은 입증됐지만 상업성에선 글로벌 제약사들이 생산한 기존 신약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잇단 악재를 바이오의약업계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생산과 기술 수출에 집중해 온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투자 규모와 노하우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바이오업체 관계자는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겪는 것은 당연한 과정인데도 임상 중단을 발표할 때마다 사기 집단으로 몰리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약이야말로 물질을 찾고 상용화까지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단기 성과에 매몰돼 있다”며 “장기적 안목과 장기 투자, 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재천 전무는 “바이오헬스 산업은 자동차나 반도체처럼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수출 산업”이라며 “우리의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 차원에서 정부가 보다 과감한 규제 완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min@donga.com·김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