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시니어’ 시대] <4> 요양원을 거부한 노인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시니어 코하우징 ‘둔데르바켄’ 공용 라운지에서 주민들이 피카(FIKA·커피타임)를 갖고 있다. 둔데르바켄 제공
6월 13일 스웨덴 스톡홀롬 둔데르바켄의 저녁 시간. 오후 6시가 되자 앞치마를 맨 백발노인이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을 쳤다. 공용 응접실에서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던 여러 사람들이 느릿느릿 식당으로 모였다. 서른 명 남짓한 이들이 줄을 서서 음식을 가져오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40분 이상이었다. 그래도 재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날 메뉴는 흰살생선과 으깬 감자. 소화가 편하고 부드러우며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이다. 사람들은 12개의 공용 탁자에 모여 식사를 했다. 여기저기서 웃는 모습이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천둥의 언덕’이란 뜻을 지닌 둔데르바켄은 스웨덴의 노인 코하우징 시설이다. 60가구 70명이 모여 산다. 평균 연령은 70세. 공동 주거시설이지만 노인 코하우징은 요양원과는 다르다. 거주자들은 욕실, 부엌, 침실이 갖춰진 개인집에서 살되 식당, 도서실, 취미실 등을 공유한다. 무엇보다 거주자들이 돌아가며 식사와 청소 당번을 맡는 자율 형태로 운영된다. 그래서 노인들을 돕는 직원을 따로 고용하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꾸려나간다’는 원칙을 따른 것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고령화로 늘어나는 홀몸노인 문제를 해결하고, 이들의 삶의 질도 높이기 위해 1980년대부터 ‘코하우징’을 개발했다. 코하우징이 늘면 국가가 지원하는 도우미(helper) 서비스에 진입하는 시기가 늦춰져 노인 복지 비용도 함께 줄어든다.
라피두스 씨는 미혼이다. 나이가 드니 몸이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 곁에 없을 것이란 생각에 코하우징을 택했다. “문만 열고 나가면 이웃들이 있어 외롭지 않아요. 말동무가 필요하면 공용 공간에 갑니다. 집에 돌아와 문을 닫으면 완전히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요. 혼자 살되 외롭지도 않죠.” 그는 여생을 코하우징에서 보내겠다고 말했다.
둔데르바켄 거주자들은 하루를 보내면서 모였다 흩어졌다를 자유롭게 했다. 오전 11시, 1층 라운지에서 열리는 핀란드식 커피타임 ‘피카(Fika)’는 하루 중 둔데르바켄이 가장 소란스러워지는 시간이다. 거주자들이 돌아가면서 간단한 간식과 커피를 준비하고, 누구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자신과 가족의 암 투병 이야기, 건강에 좋은 음식, 손주 자랑 등이 단골 소재다.
이날 주제는 ‘난청(難聽)’. 이날 피카에 참석한 9명 중 2명이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난청이 얼마나 진행돼야 보청기를 사용하는지, 어느 회사 보청기가 착용감이 좋은지를 두고 얘기를 나눴다.
노인 코하우징은 이웃 나라 핀란드에도 있다. 하지만 스웨덴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방정부인 ‘코무네’가 주거 정책을 주도하는 스웨덴에선 월세를 내는 임대형 코하우징이 다수다. 반면 핀란드에서는 매매형이 대세다. 매매형은 건물을 짓기 전부터 거주자를 모집해 각자 한 채씩 구입하는 방식이다. 공용 거실, 소파의 종류, 벽지 색깔 등 모든 의사결정을 다수결로 한다.
기자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 있는 코하우징 로푸키리와 코티사타마 두 곳도 방문했다. 둘 다 매매형 시설이다. 가장 작은 평형인 38.5m² 방에서 거주하는 비용이 약 2억2700만 원. 비슷한 시설의 인근 주택 시세와 비교하면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저렴한 수준이다. 각자 집에 대한 소유권이 있지만 새 거주자를 들이려면 기존 거주자들의 면접 통과가 필수적이다.
‘마지막 전력 질주’란 뜻의 로푸키리는 핀란드 매매형 코하우징의 원조로 통한다. 1999년 친구 사이였던 할머니 4명이 “요양원에 사는 부모님처럼 늙고 싶지 않다”고 결심한 뒤 시작했다. 핀란드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정부가 노인 복지비용을 삭감해 요양의 질이 떨어진 것도 한몫했다. 이들은 헬싱키시에 노인 공동 주거시설용 부지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건설이 완료된 2005년까지 시와 부지 매입 임대, 지원 범위까지 줄다리기하듯 협상했다.
로푸키리를 벤치마킹해 2015년 완공한 코티사타마는 이 과정을 2년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항구 옆 집’이라는 뜻의 코티사타마는 200m만 걸어 나가면 바다를 접하는 곳에 있다. 전망이 좋아 선호도가 높다. 특히 핀란드가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점을 반영하듯 코티사타마는 코하우징 전용 애플리케이션(앱)까지 만들었다. 반상회 일정, 모임 시간, 정기 건강검진 가능 날짜 등을 모두 앱으로 공유한다. 코티사타마의 홍보담당자 겸 거주자 마리우트 헬미넨 씨(71)는 “처음에는 코하우징 개념이 생소해 헬싱키 시 공무원들이 결정을 망설였다. 높은 만족도로 유명해지자 이제 타국 공무원을 직접 데려와 우수 복지 사례로 소개한다”고 귀띔했다.
<나는 시니어 코하우징에 잘 맞을까? 체크리스트>
1. 60세 이상으로 결혼 출산 이혼 등 가족 구성원 변화가 적다2. 하루종일 돌봐야 할 어린 자녀나 손주, 부모님이 없다
3. 1년에 석 달 이상 집을 비우지 않는다
4. 6~8주에 1주씩 공동 조리, 공용 공간 청소를 할만한 체력이 있다
5.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게 즐겁다
6. 살 집보다 함께 일상을 나눌 이웃이 더 필요하다
7. 나이 들어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예’라고 응답해야 시니어 코하우징에 잘 맞는 사람.
코하우징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죽음’과 일상적으로 조우한다. 하지만 고독사는 없다. 식사시간에 나오지 않거나, 공용 공간에서 보이지 않으면 이웃들이 살펴보다 병원에 데리고 간다.
로푸키리 거주자 64명 중 3명이 지난해 사망했다. 이곳에서 10년간 살아온 비테 아스켈룬드 씨(70)에게 “가까운 이웃의 죽음을 계속해서 접하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지난해 제작한 달력을 내밀었다. 백발의 노인들이 각 달의 테마에 맞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달력이었다. 봄엔 봄의 정령을 흉내 내며 흰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을, 여름엔 노란 우산을 쓰고 일렬로 걷는 모습을 촬영했다. 달력 촬영을 맡은 노인이 지난해 세상을 뜬 3명 중 1명이라고 했다. 아스켈룬드 씨는 “이 친구가 죽었을 때 모두 와인을 들고 1층에 모였다. 달력을 넘기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식사 준비와 청소를 스스로 했다. 이곳은 인생이란 달리기의 ‘마지막 동반자’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거듭 강조했다.
스톡홀름·헬싱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