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1운동 임정 100년, 2020 동아일보 창간 100년] 불교계 항일 비밀결사 ‘만당’ 근거지… 주지 지낸 최범술은 건국훈장 추서
사천 항일운동의 성지로 평가받는 다솔사 전경. 한용운은 다솔사에 머물면서 독립선언서 공약3장(오른쪽)의 초안을 작성했다. 사천시 제공
최범술
다솔사는 1930년대 활동한 불교계 항일 비밀결사 만당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다솔사와 인연이 있는 사천 출신 독립운동가로는 주지를 지낸 최범술(건국훈장 애족장)이 대표적이다. 다솔사에서 출가한 최범술은 1919년 당시 해인사의 지방학림 학생이었다. 그는 사천 출신으로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 최원형에게서 독립선언서를 받은 뒤 동지들과 함께 1만여 장을 인쇄해 합천 의령 진주 사천 등에 배포하며 만세운동 확산에 노력했다.
그는 고향 사천 서포면과 곤양면에선 직접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송지환 신영범 등과 함께 태극기를 수백 장 만든 뒤 4월 10일과 4월 16일 서포개진학교 학생과 주민 100여 명을 이끌고 시위를 감행했다. 주동자 전원이 현장에서 붙잡혀 고문을 받고 재판에 회부됐지만 최범술은 처벌을 면했다. 운동의 주모자로 밝혀졌지만 만 15세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포면 주민들은 1968년 서포초등학교 교정에 이를 기념하는 ‘3·1의거비’를 세웠다. 최범술이 직접 쓴 비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청춘의 애끊는 조국애의 우렁찬 소리. 그 의로움이 끝끝내 빛나 광복이 오고, 우리들이 배우던 교정에 이 비가 서노니 이 강산 이 조국이 길이 빛나리. 대한독립 만세를 드높이 부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