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기축통화 역할, 독일도 못 흔들어 선언성 ‘평화경제’로 우리를 지킬 수 있을까
고기정 경제부장
2차 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발발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이에 맞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게 9월 3일이었다. 반면 스위스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날인 8월 31일 이미 43만 명의 민병대 동원령을 발령했다. 또 독일군 기갑부대에 대비해 북동부의 베른과 취리히 등 대도시를 사실상 포기하고 동부의 알프스 산악 지역을 거점으로 한 장기 게릴라전을 준비했다. 독일로선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기까지는 군사학이 보여주는 정황이다. 실은 스위스가 독일의 침공을 피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스위스프랑이 전시 기축통화 역할을 한 때문이었다. 당시 독일 등 추축국은 석유 등 자원을 제3국으로부터 수입하려 했다. 문제는 결제 수단이었다. 중동 국가들은 미국 달러화나 영국 파운드화마저 거부했다. 전쟁 참가국의 통화는 언제든 휴지 조각이 될 수 있어서다.
스위스프랑 얘기를 꺼낸 건 문재인 대통령이 5일 극일의 방법론으로 제시한 ‘평화경제론’ 때문이다. 대통령은 일본 경제가 우리 경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 시장이며,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를 실현하면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했다. 당장 기업인들 반응이 이례적으로 싸늘하다. 이 발언이 나온 뒤 한 대기업 계열사 대표는 정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고 했다. 그는 본인도 누구처럼 ‘강남 좌파’라며, 친문까지는 안 돼도 비판적 지지 세력으로 남겠다고 했던 사람이었다.
기업인들이 실망한 건 대통령이 일본 경제 보복으로 초래된 불확실성의 해법으로 북한이라는 또 다른 불확실성을 제시해서다. 한 기업인은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포용경제, 혁신경제에 이어 이제 평화경제까지 나왔다. 어느 하나라도 손에 잡히는 게 있느냐”고 했다. 한일 경제전쟁의 최전선에 선 기업들로선 현실성 있는 대안을 확인하거나, 그게 안 되면 최소한 위로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일각에선 대통령의 메시지 관리에 기술적 문제가 있었다는 말도 있지만 8·15 경축사에서 평화경제를 재차 강조한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스위스 정부가 2차 대전 당시 국민들에게 ‘알프스 옥쇄 투쟁’만 외쳤다면 과연 전쟁을 면할 수 있었을까. 스위스는 알프스 산맥 곳곳에 생필품을 저장하며 진지를 구축할 때도 정부 보유 금괴부터 옮겼다. 그 덕분에 사방이 독일과 그 점령지로 둘러싸였음에도 멀리 남미로부터 밀을 수입해 식량 부족 상황에 대응할 수 있었다. 스위스프랑이 기축통화가 된 건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전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통화가치 안정을 유지하려는 현실적 노력 때문이다. 평화든 전쟁이든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