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정치부 차장
회의가 열릴 때마다 굵직굵직한 대책이 쏟아진다. 위기 상황에서 정권 핵심들의 속도감 있는 움직임은 국민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 덜어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특히 한일 갈등이 본격화된 뒤 더 그런 듯하다. “내년도 본예산에 소재 부품 개발 관련 예산을 ‘최소 1조 원+α’ 규모로 반영한다.”(4일 당정청 회의) “해외 인수합병(M&A) 법인세 세액 공제, 해외 전문인력 소득세 세액 감면 등을 추진한다.”(13일 당정청 회의) 등의 아이디어도 쏟아지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각종 대책기구를 연이어 출범시키고 있다. 한일 갈등과 관련해선 당정청 상황 점검 및 대책위,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 소재부품장비인력발전특별위, 한일경제전예산입법지원단 등 당내에 벌써 4개의 관련 기구를 꾸렸다. 여야 5당과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민관정협의회 등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그런데 당정청이 모여서 단결을 다짐하고, 대책을 발표하면 그대로 실현되나. 그동안 당정청이 내놓은 많은 대책의 뼈대는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 즉 기술자립을 위한 예산 확대와 관련 세제 법령 개정 추진 ‘계획’이다. 예산 확대와 법 개정, 어느 한 가지도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현실화가 불가능하다.
4월 25일 국회로 제출된 추가경정예산안은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99일 만인 이달 2일 가까스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음 달 시작될 정기국회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는 이미 전운에 휩싸였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관련 의혹으로 야당은 독이 잔뜩 올라 있다. 정기국회는 원래 야당이 당정청을 공격하는 시기다.
최근 여당 핵심들의 발언을 들여다보면 위기감 고조만 있을 뿐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협치 등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대화와 설득은 제쳐 두고 여론을 앞세운 전략을 세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가뜩이나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행보 하나하나가 모두 내년 총선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여전하다. 당정청은 이제라도 구호를 넘어 각종 대책의 현실화를 위해 야당을 어떻게 설득하고 정치권의 협치를 이끌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해법을 보여 줄 때가 됐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