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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활용해 재배환경 원격제어… 생산 딸기 90%가 ‘최상품’

입력 | 2019-08-19 03:00:00

[스마트팜, 농촌의 4차 산업혁명]<5> 첨단 옷 입은 시설하우스




13일 전남 장성군 진원면 투베리농원 딸기 모종 시설하우스에서 이장호 씨가 컴퓨터로 실내 온도와 습도, 일사량 등을 정밀하게 원격제어 하는 스마트팜을 선보이고 있다. 이 씨는 스마트팜을 통해 연간 딸기 30t 중 27t을 최상품으로 생산하고 모종 12만 주를 재배해 6만 주를 판매하는 딸기 명인이 됐다. 장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3일 전남 장성군 진원면 불태산(720m) 밑자락 학전리. 시설하우스 위로 안테나처럼 비쭉 솟아있는 장비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투베리농원 이장호 대표(52)는 “대기온도, 습도, 풍향 등을 관찰할 수 있는 기상대”라며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원격으로 하우스 환경을 제어해 최상품 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투베리 농원은 연간 30t 정도의 딸기를 생산해 3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이 대표가 수확하는 딸기의 품질이 뛰어나 지역에선 ‘딸기 명인’으로 불린다. 하지만 농사 경력은 7년 정도로 짧다. 초보 농부에서 명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비결로 이 대표는 스마트팜을 꼽는다. 이 대표는 “시설하우스 모든 환경을 컴퓨터로 제어하고 재배 경험을 데이터화해 딸기를 키운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 장교 출신 초보 농부에서 스마트팜 고수로


이 대표는 공군 학사장교로 임관해 국방부, 청주 공군부대 등에서 25년 동안 복무하다 2012년 3월 소령으로 전역했다. 전역 준비를 위해 둘러본 퇴직박람회에서 우연히 귀농귀촌 부스를 찾은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처음에는 은퇴이민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귀농은 말이 통하는 곳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귀농을 결심했다.

평생 군인에게 농촌 생활은 큰 도전이었다. 그는 “군인 시절 사병들에게 병영 내 풀베기를 지시한 것이 귀농 전 농사와 관련된 유일한 경험이었을 정도”라며 웃었다. 다른 농부가 농사를 포기해 잡초만 무성하던 딸기 시설하우스 4개동을 임차해 딸기 모종을 심으며 농사의 첫발을 뗐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농사 첫해인 2012년 8, 9월에 태풍 세 개가 잇달아 남해안을 강타했다. 시설하우스가 찢어지고 농장 일대가 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극심했다. 그나마 딸기 모종 3만 주를 미리 거둬들여 저온창고에 안전하게 보관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뼈저린 실패를 맛본 이 대표는 2013년 스마트팜에 도전한다. 경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는 안 되겠다고 절감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남 장성·담양·화순·강진군 등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으로 농사를 짓는 스마트팜에 사업비를 지원해주고 있었다.

군에서 북한 공군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일을 했던 이 대표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스마트팜을 통해 딸기 재배의 각종 데이터를 얻으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6000m² 넓이 시설하우스 4개동 내부에 온도와 습도, 일사량 등을 조절하는 천창과 커튼, 분무기를 설치했다. 시설하우스 밖에는 대기온도, 습도 등을 관찰하는 기상대를 만들었다. 이 대표는 “성공적인 스마트팜을 하기 위해서는 눈 역할을 하는 기상기기와 팔다리 기능을 하는 천창, 커튼 등을 종합적으로 제어해야 한다”고 했다.

스마트팜을 도입한 뒤 효과가 나타났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환기하던 것과 달리 적정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제어하니 일손이 줄어 인건비가 크게 절감됐다. 재배환경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자 딸기 생산량이 늘고 품질도 좋아졌다. 병해충을 사전에 예방하면서 불량률도 크게 개선됐다. 덕분에 입소문이 나면서 판로가 확보되고 매출도 증가세를 보였다.

이 대표는 추가로 지은 시설하우스에도 기상기기와 천창 등을 설치했다. 현재 시설하우스 18개 동(1만4880m²)에서 스마트팜을 통해 인건비와 난방비를 60%가량을 절감하며 딸기를 수확하고 있다.

이 대표가 생산하는 딸기의 90%가 최상품 판정을 받는다. 스마트팜을 통해 습도, 온도 등을 최적화해 다른 농가보다 최상품 수확량이 월등히 높다. 연간 1000만 원어치의 이산화탄소를 공급하는 것도 이 대표의 비법이다. 이 대표는 “딸기에 이산화탄소를 공급하면 과육이 단단해지고 단맛이 높아져 최상품 수확이 늘어난다”고 했다.

○ 최고의 재배 비법, 다른 농부들과 공유


하지만 기술과 장비를 갖췄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4년간 전남농업마이스터 대학에서 딸기 재배를 배우는 등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새벽에 온실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할 뻔한 적도 있지만 명품 딸기 재배의 꿈을 버린 적이 없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정현 전남대 원예생명공학과 교수(49)는 “딸기 생육 상태를 세심히 관찰하며 최적의 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농부의 능력”이라며 “이 대표는 딸기를 딸기답게 키우는 명인”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다른 딸기 재배 농가와 경쟁하기보다는 함께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최상품 딸기를 많이 재배할수록 딸기 자체의 인기와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배우고 익힌 농사 정보를 다른 농가들과 공유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투베리농원의 딸기 재배와 관련한 각종 정보는 농촌진흥청이 운영하는 ‘스마트팜코리아’라는 사이트에 공개돼 다른 농부들도 볼 수 있다.

김덕현 전남농업기술원 자원경영과 연구관(51)은 “투베리농원은 영양분, 물 등을 가장 적절하게 공급하는 정밀한 환경 제어로 최고 품질의 딸기를 생산한다”며 “재배 비법을 다른 농민들도 보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베리농원 중앙에는 82m² 넓이의 강의장도 있다. 딸기 재배로 유명한 농부를 불러 경험담을 듣고 귀농하는 초보 농부를 가르치는 곳이다. 한 해 평균 초보 농부 100명이 이곳에서 딸기농사를 배운다. 이 대표는 “명품 딸기를 생산해 농가 경쟁력을 높이는 농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작은 꿈”이라고 말했다.

장성=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