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시절 KLPGA투어 3승 -고진영, 김효주, 김민선과 황금 세대 주역 -미국 진출 실패 후 국내 복귀 최악 슬럼프 -최근 희망 찾기에 안간힘
시즌 최고 성적을 거둔 KLPGA 보그너여자오픈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하고 백규정. <KLPGA투어 제공>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버디를 한 그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흘렀다.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신감을 찾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천재 골퍼로 이름을 날렸던 백규정(24)이다.
백규정은 18일 경기 양평 더 스타휴 골프앤리조트(파71)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보그너 MBN여자오픈 최종 3라운드에서 4타를 줄여 최종 합계 8언더파 205타를 기록해 공동 13위로 마쳤다. 전날 5타를 줄인 데 이어 이틀 동안 9언더파를 몰아친 덕분에 자신의 시즌 최고 성적을 거뒀다. 백규정은 “과거의 내 모습과 자꾸 비교하지 않으려 한다. 작은 성공들에도 칭찬하려 노력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2011년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한 백규정. <동아일보 DB>
백규정이 누구인가. 7세 때 골프를 시작한 그는 1995년생 동갑내기인 김효주, 고진영, 김민선 등 황금세대에서도 선두 주자였다. 현일고 1학년 때인 2011년 국내 최고 권위의 강민구배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했다. 백규정의 뒤를 이어 이듬해 김효주가 정상에 섰고 고진영은 고교 3년 때인 2013년 이 대회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2012년 국가대표로 세계아마추어선수권 단체전에서 김효주, 김민선과 우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175cm의 큰 키에 어떤 주저함도 없이 거침없이 휘두르는 스윙이 트레이드마크. 주니어 시절부터 최대어로 꼽혔다.
프로 전향 후 2013년 KLPGA투어 시드전을 수석합격한 뒤 루키 시절인 2014년 3승을 거둬 쟁쟁한 동기들을 모조리 제치고 평생 한번 뿐인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그해 국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2015년 ‘빅 리그’에 진출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까지 썼다.
미국 직행의 길을 열었던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백규정. <박준석 작가 제공>
승승장구하던 그는 LPGA투어에 뛰어들어 번번이 고개를 숙이더니 투어카드를 포기하고 3시즌 만에 국내 복귀를 결정했다. 허리 부상까지 겹쳐 힘든 나날을 보냈다. 안방에서도 극도의 부진에 허덕이며 눈물을 쏟는 날이 많았다. 성급한 미국 진출이 독이 됐다는 지적에 주위의 지나친 간섭이 오히려 그를 더 깊은 늪으로 몰고 갔다는 얘기도 나왔다. 게으른 천재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었다.
백규정 2019시즌 KLPGA 투어 주요 기록
올해 들어 백규정은 재기를 향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15개 대회에서 7번 컷 탈락했던 그는 최근 4개 대회 연속 컷 통과에 성공했다. 2017년 75.47타(115위)로 치솟은 평균 타수는 2018년에도 76.02타(114위)에 머물렀으나 올해는 72.82타(59위)로 떨어졌다. 백규정은 “그동안 기술적으로 샷이 완전히 망가졌다. 10년 넘게 익숙한 느낌이 조금씩 사라지더니 내가 생각하는 감이 완전히 사라졌다”며 부진의 원인을 진단했다.
문제를 찾으려고 계속 애썼던 게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는 게 그의 생각.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기술적인 것들을 바꾸기로 하고 이번 시즌을 앞둔 전지훈련부터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백규정은 “지난해나 재작년보다 조금이라도 플레이가 달라질 수 있었다. 아직은 내가 원하는 느낌은 아니다. 여전히 컨트롤이 안돼 코스에 나가면 편안한 건 아니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코스 공략이나 다른 부분들로 만들어 플레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KLPGA투어 신인 시절 밝은 표정의 백규정. <동아일보 DB>
어릴 때 말을 타며 질주 본능을 키운 백규정은 마음을 추스르고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릴 적 좌우명으로 삼았던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기’도 자주 떠올리고 있다. 부활을 꿈꾸는 그의 발걸음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