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정책사회부 차장
지난달 4일 발생한 ‘제주 카니발 폭행’ 사건이 그랬다. ‘칼치기’에 항의하던 아빠는 카니발 차량 운전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맞았다. 차량 뒷좌석에 있던 5세와 8세 두 어린 자녀가 이 모습을 지켜봤다. 아이들은 아빠를 때리는 운전자를 괴물처럼 봤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수도 있다.
운전석에만 앉으면 ‘괴물 본능’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잘못된 교통문화와 운전습관이 괴물 본능을 자극하면 난폭운전이나 보복운전으로 이어진다. 2017년부터 2년간 적발된 보복운전은 8835건에 달했다. 고의적인 급제동이나 진로방해 행위가 35.9%로 가장 많았다. 제주 카니발 사건처럼 상대 운전자를 폭행하고 차량을 파손하는 일도 10%가 넘었다. 피해를 입고도 ‘일진 사나운 날’이라며 참고 신고하지 않은 사람은 더 많을 것이다.
자신의 집 현관문을 열기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아파트단지 내 도로가 레이싱 경기장인 양 질주 본능을 발휘하는 차량, 학원 차량에서 아이들이 내리는 걸 보고도 유유히 추월하는 차량까지 괴물 같은 운전자들이 이어달리기 하듯 등장한다.
지긋지긋한 후진적 교통문화는 숫자로도 증명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국토교통부 의뢰로 조사하는 교통문화지수가 있다. 국민의 교통안전의식 수준을 분석한 것이다. 지난해 교통문화지수는 75.25점. 대학으로 치면 C학점이다. 전년도에 비해 고작 1.64점 올랐다. 자세히 보면 더 암담하다. 횡단보도 정지선 준수율은 78.45%로 전년도보다 1.41% 떨어졌다. 2014년부터 7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깜빡이(방향지시등)’ 켜는 비율은 지난해 71.51%였다. 줄곧 60%대에서 헤매다 2017년에야 70%를 넘어섰다. 그나마 차량 신호 준수율만 95%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수치가 높은 이유가 있다. 곳곳에 설치된 단속 카메라 영향이다.
지난해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는 42년 만에 3000명대로 떨어졌다. 정책의 변화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덕분이다. 하지만 그만큼 교통문화가 바뀌었는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도로 곳곳에는 보행자를 공격하듯 달리는 괴물이 판치고 있다. 괴물을 잡으려면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 안에 있을지도 모를 괴물 본능도 찾아야 한다.
이성호 정책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