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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시작했습니다[2030 세상/정성은]

입력 | 2019-08-20 03:00:00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해외 직구로 산 빔 프로젝터가 고장이 났다. 자취하면서 구입한 제일 비싼 물건이었는데, 국내에선 서비스도 안 된단다. 욕이 절로 나온다. ‘망했네, 혈압 오른다….’ 그런데 그날따라 태연했다. 급기야 고장 난 리모컨을 바라보며 (사실 프로젝터 본체는 멀쩡했다. 더 환장할 노릇) 속으로 혼잣말까지 했다. ‘고장 났구나? 그래, 고생 많았다. 너를 사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큰 기쁨을 줬으니 슬픔도 자연스러운 거겠지. 모든 건 변하니까. 고장 날 수도 있지.’ 이 무슨 법륜 스님 유튜브 강의 같은 얘긴가. 하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억지로 노력한 건 아니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관찰하고 어떤 마음을 취해야 할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채택된 결과였다. 명상에서 배운 ‘아닛짜(anicca·무상)’의 영향일까. 모든 것은 일어나고 사라지고 변한다. ‘아닛짜.’

요즘 일주일에 한 번 명상을 하러 간다. 도착하면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제출한다. 현대인들에겐 돈을 내고 스마트폰을 뺏기는 사업이 절실한데 명상원이 그 선두주자다. 그렇게 각자 자리를 잡고 방석 위로 올라가면 준비 완료. 지각은 안 하는 게 좋다. 첫 10분 동안 너무나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명상’이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한다. 숨을 느낀다. 말은 시적(詩的)이나 실상은 콧구멍 사이로 드나드는 공기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이다. 은근히 어렵다. 당최 집중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주식 안 했으면 카메라 사는 건데. 떨어졌을 때가 기회일까. 휴가는 언제 가지.’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건 모두 과거나 미래에 관한 일이랍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이뤄진 허구의 세계에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지금 여기로 돌아오세요.” 회사에서 일을 못 끝내고 와 마음이 무거운 사람부터 이별해 울다가 온 사람까지. 이 공간에서 짧은 의식을 치르고 나면 사람들 얼굴은 잠에서 덜 깬 강아지처럼 된다. 무언가를 깨닫거나 더 나은 내가 되는 게 명상의 목표라 생각했는데, 그저 마음 놓고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거였다니. 마음이 공허할 때마다 계속 밖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이젠 안에서 찾으려는 나를 발견한다.

“옆 사람의 눈을 쳐다보며 물어봐 주세요. ‘오늘 마음이 어때요’라고.”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땐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한 번 더 물었다. 그래서 마음이 어땠나요. 실제 있었던 일과 그에 대한 판단 말고, 그래서 당신의 마음이 어땠는지. “글쎄요. 제 마음은 그러니까.” 어떤 분노는 알아주는 것만으로 사라졌다. 중요한 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마음의 회복이라는 것을. 만약 회사 다녔을 때 이런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더 오래 다니지 않았을까? 가족끼리도 마찬가지다.

마음 체크인이 끝나면 본격적인 명상이 시작된다. 선생님의 가이드에 따라 한 시간을 가만히 눈 감고 호흡한다. 어떤 날은 졸기도 하고, 몸의 감각들이 느껴져 저릿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귀하다. 어쩌면 그 시간을 돈으로 사는지도 모른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