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팜, 농촌의 4차 산업혁명] <7> 농식품 ICT로 거듭난 사과농원
전북 김제시 용지면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산지뜸농원 김동권 대표가 과수원에 설치한 기상측정 장비의 데이터 값을 살펴보고 있다. 김 대표는 “2017년 스마트팜을 도입한 뒤 사과의 품질이 높아지고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고 했다. 김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북 김제시에서 10여 년째 사과를 키워온 베테랑인 김동권 산지뜸농원 대표(42)도 당연히 수확량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받아든 성적표는 달랐다. 수입은 전년과 같았고 오히려 사과의 품질은 높아졌다. 김 대표는 “2017년 과수원에 도입한 스마트팜이 효자 노릇을 했다”며 “스마트팜을 하지 않았다면 농사를 접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 온실 아닌 노지에서도 스마트팜이 효자
김 대표는 ‘농식품 ICT 융복합 확산 사업’을 통해 스마트팜과 인연을 맺었다. 매일 작성해 온 영농일지를 통해 김제 지역에서 봄철 강수량이 점점 줄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꽃이 피는 초기 생육기에 사과나무가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체계적인 수분 관리를 통해 사과의 생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스마트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스마트팜에 필요한 센서 등을 설치하는 시공업체들이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노지 설치를 기피했다. 다행히 담당 공무원이 가까스로 건실한 국내 업체를 소개해줬다. 2017년 토양수분 센서(수분 관리), 외부환경측정 센서(생육환경 관리), 온도 및 습도 센서(저온저장고 관리) 등 3가지 기술을 농장에 적용해 본격적으로 스마트팜을 시작했다.
각각의 센서를 통한 측정값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농장에 가지 않고도 시스템에 접속해 모니터링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스프링클러를 원격으로 가동해 수분을 공급한다”고 말했다. 저온저장고 관리도 잘돼 수확한 사과의 보관 상태도 개선됐다.
특히 장기간 비가 오지 않을 때 스마트팜이 효자 노릇을 했다. 토양수분 센서로 측정한 토양 수분율과 온도를 고려해 제때 물을 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과 재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분 조절”이라며 “수분이 충분해야 과일의 당도도 높아지고 병충해에도 강해진다”고 말했다.
○ 위기를 기회로 바꿔준 스마트팜
김 대표는 2004년 사과 재배에 뛰어들었다. 전북대에서 생물공학과 원예학을 복수 전공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아버지의 사과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녹록지 않은 농사일이었지만 알알이 익어가는 사과를 보며 견뎠다. 벤처농업대학을 졸업하는 등 품질이 좋은 사과 생산을 위해 연구도 멈추지 않았다.
농산물의 불합리한 유통 과정을 목도하고 직거래의 필요성에도 눈을 떴다. 온라인 장터를 적극 활용하고,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사내 판매도 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수확한 사과 전량을 직거래로 ‘완판’하자 부모님도 김 대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농사를 하면서 숱한 시련도 겪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오랜 기간 방치됐던 농장을 일구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지만 2012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볼라벤은 큰 좌절감을 안겨줬다. 2016년에는 그가 몰던 1t 트럭이 신호를 위반한 35t 화물차와 충돌하면서 반년 넘게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다.
김 대표는 “스마트팜이 아니었다면 교통사고로 몸도 많이 안 좋아져 사과 농사를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며 “스마트팜은 위기에서 나를 구해준 고마운 선물”이라고 말했다.
망설이는 다른 농부들에게도 스마트팜을 적극 추천했다. 김 대표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운용이 어려울 것이라고 막연히 두려워하는 농민들이 많다”며 “앞으로는 스마트팜을 하지 않으면 농업에서 도태될 것이다. 이제 스마트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김제=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