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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 상속[횡설수설/송평인]

입력 | 2019-08-22 03:00:00


상속을 불평등의 기원이라고 보고 상속 재산을 국가나 사회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상주의자도 있다. 그렇지 않고 상속을 인정한다고 해도 재산이 플러스일 때만 물려받고 빚이 있을 때는 물려받지 않는다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것은 아니다. 부모 잘 만나 부자가 되는 것은 막지 못해도 부모 잘못 만나 빚쟁이가 되는 것만은 막아주자는 데 상속 포기나 한정 상속(상속한정승인) 제도가 생긴 이유가 있다.

▷상속 포기를 하면 빚이 후순위 상속자에게 넘어가 그가 피해를 볼 수 있다. 한정 상속을 하면 자기 순위에서 상속이 멈추고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에서 빚을 갚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자기 회사가 부도가 나도 가족들 앞으로 돌려놓은 돈이 많아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있듯, 부모의 빚잔치 덕분에 잘 먹고 잘살아 놓고는 부모 빚을 상속하지 않는 데 상속 포기나 한정 상속을 악용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부친이 사망했을 때 가족에게 남긴 재산은 정리해보니 고작 21원이었다. 가족은 부친의 빚이 또 얼마나 있을지 몰라 한정 상속을 신청해 뒀다. 그 결과 나중에 법원이 조 후보자 모친에게 18억 원, 조 후보자 형제에게 각각 12억 원을 캠코에 지급하라고 판결했을 때 세 사람은 한 푼도 물지 않았다. 56억 원대의 재산가인 조 후보자도 한 푼도 물지 않았다. 아무런 절차적 하자는 없다. 다만 캠코가 못 받은 42억 원이란 돈은 결국 국민의 몫이 될 수 있다.

▷조 후보자 가족은 모두 부친의 빚을 상속하지 않았지만 모친과 동생은 부친과 동생이 각각 운영한 건설회사의 연대보증인으로, 두 회사가 모두 부도가 나면서 기술보증기금 등에 별도로 약 50억 원의 빚을 지게 됐다. 모친이야 자식에 기대 채권자에게 빼앗길 돈 없이 무일푼으로 살면 그만이지만 동생은 그럴 수 없었다. 배우자도 있고 어린 자식도 있는 상황에서 채권자에게 쫓기게 되면 서류상 이혼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조 후보자의 동생은 빚도 많지만 부친이 이사장으로 있던 사학재단에 공사대금 채권 52억 원도 갖고 있다. 그는 논란이 일자 채권을 기술보증기금에 진 빚을 갚는 데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 채권은 사학재단에 가용할 자금이 있어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의 현금화는 쉽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한정 상속으로 부친이 생전에 진 빚은 모두 탕감받으면서 부친 사학재단에 대한 채권은 언젠가라도 행사하겠다는 것이 양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