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서촌의 무목적 빌딩.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경복궁 옆 동네인 서촌의 오래된 한옥 건물 사이 4층짜리 노출 콘크리트 건물에 조그맣게 쓰인 이름이다.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건물로 모여들고, 내부로 들어온 사람들도 미로 같은 공간에서 물 흐르듯이 배회하게 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층에는 수공예품 판매장과 디자인제품 숍이 있고 2층에는 사진스튜디오, 3층에는 갤러리, 4층에 들어선 ‘대충 유원지’ 바에는 시원스러운 통창을 통해 서촌과 인왕산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인스타그램 명소로 꼽힌다. ‘대충(大蟲)’이란 조선시대에 호랑이를 일컫는 말. 인왕산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다.
3층 갤러리의 중앙정원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김동욱 작가의 작품.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실제로 지난해 이 건물을 완공한 뒤 이 샛길을 처음 사용한 사람들은 소방관들이었다. 영화루가 내부 수리 도중 화재가 났을 때 119대원들이 넓은 필운대로에 소방차를 세우고, 이 건물을 통과하는 길을 통해 불을 껐다.
송호준 작가의 미디어아트 전시.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곳에는 원래 가정용 액화석유가스(LPG) 저장소로 쓰이던 콘크리트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무목적 빌딩도 원래 풍경과 비슷하게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그러나 신축 건물의 콘크리트 벽면이 매끄럽지 않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가 하면, 진흙으로 빚어놓은 듯 울퉁불퉁하고 거칠다. 일부러 두껍게 만든 콘크리트 외벽에 고압 살수장치로 물을 쏘아대 상처를 내는 ‘치핑(Chipping)’ 공법을 사용한 것이다. 수압의 크기에 따라 벽면에는 크고 작은 무늬의 상처가 났고, 심한 곳은 철근이 보일 정도다. 이로써 세련된 새 건물이지만 원래 있었던 것처럼, 오래된 서촌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풍경이 됐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