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지 않고 종료하기로 했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후 “일본이 명확한 근거 없이 ‘신뢰 훼손으로 안보상 문제가 발생했다’며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함으로써 안보협력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며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 협정을 지속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결정은 연장 통보 시한을 이틀 앞두고 나온 초강수 대응이다. 그제 베이징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 측의 태도 변화를 기대했지만 양측의 간극만 확인하자 강경 대응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간 정부 내에서도 비록 조건부라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강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인사 검증 정국이라는 국내 정치적 고려도 작용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번 결정으로 잠시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던 한일 관계는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당장 “극히 유감”이라며 반발했다. 당장 내일까지 양국 간 외교 행보에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일본은 28일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예정대로 시행함은 물론이고 보다 교묘한 보복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정부는 “이번 결정이 한미동맹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했지만, 미국은 한미일 3국을 연결하는 안보협력의 고리가 끊기는 것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번 결정을 미국 주도의 동북아 안보협력 체제에서 한국이 이탈하려는 조짐으로 해석할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 북한에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일본이 얼토당토않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경제 보복을 가한 데 대한 맞대응이라고 설명하지만, 경제 보복에 안보 사안을 끌어들이는 것이 과연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관계에서 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신뢰의 기반을 걷어차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범하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