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불법 없었다” 주장하는데 합법 기회 못 챙긴 국민만 바보인가 지지세력만 보며 마이웨이 하는 文… 법무장관이 檢 피의자 될지라도 “일단 기회 주자” 임명 강행 가능성
이기홍 논설실장
예상대로 문 대통령은 조국 지명을 강행했고, 며칠 만에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임명을 강행하기도 철회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일거다.
임명 강행 시엔 넘어야할 장애물이 너무 많다. 우선 법무장관이 검찰 수사 피의자가 되는 초유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 현재 조 후보자에 대해선 ①논문 부정(업무방해 혐의 등) ②웅동학원 재산 처분 의혹(강제집행 면탈, 사기혐의 등) ③사모펀드 투자 및 업체의 관급공사 수주 ④의전원 교수의 의료원장 취임 ⑤교육부의 미성년논문 조사팀에 대한 민정수석실 감찰 ⑥부동산 위장매매 등등 여러 의혹이 제기돼 있다. 수사와 진상규명 없이는 의혹을 벗기 힘든 내용들이다.
법무장관은 검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다. 개별사건 지휘권은 없지만 수사내용은 보고 받는다.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 개별사건을 지휘할 수도 있는데, 이는 2005년 강정구 교수 사건 때 외엔 전례가 없다. 특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시중에선 자칫하다간 법무장관이 아니라 ‘법무부 교정시설 식구’(수감)가 되는 거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만약 청와대가 검찰 수사도 없이 “불법은 없었다”고 결론짓고 임명을 강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당에서 최근 “특혜가 아니고 보편적 기회였다” “누구나 신청하고 노력하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는 등의 발언이 나오는 등 “부적절한 일이지만 불법은 없었다” 쪽으로 몰아가려는 기류가 강하다.
청와대가 그런 결론을 내면 이는 조 후보자 딸이 시험 한 번 치르지 않고 누린 최고의 코스가 국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던 기회였다는 뜻인데, 그런 ‘보편적이고 합법적인 기회’를 놓친 대다수 국민은 게을러 제 밥을 찾아먹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귀결돼 버린다.
허탈해하는 젊은이와 학부모들을 ‘피해자’가 아니라 열려있던 합법적 공간을 이용하지 못한 ‘곰바우’로 만드는 것이다.
임명철회는 문 대통령으로선 두 가지 이유에서 고개를 흔들 것이다. 첫째 386운동권의 상징 같은 인물의 추락은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차기 대선 플랜에도 영향을 미친다.
집권세력과 지지진영에서 나오는 철회 불가론의 두 번째 근거는 사법개혁의 무산 우려다.
그러나 따져보면 그런 우려들은 타당하지 않다. 첫째 이 정권 지지세력 일부에선 조국을 386 학생운동권의 상징처럼 여기는데 이는 과장된 것이다. 조국은 1980년대 초중반 전두환 군부독재시절 학생운동사에서 별로 족적이 없다. 이미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가 쟁취되고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한 1990년에서야 사노맹 사건에 등장한다. 주사파의 대부였던 김영환은 “조국은 운동권의 축에도 못낀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녀입시, 사모펀드, IMF 때 부동산 투자 논란 등은 조 후보자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을 미안해하며 절제하고 나누는 그런 신독(愼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문재인 정권의 도덕적 담론의 축이 되기엔 부족한 것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그의 퇴진을 자신의 아바타의 추락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
이렇게 정치적·이념적 진영논리를 벗어나면 해법은 너무도 뚜렷이 보인다. 진보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고, 숱한 의혹으로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인사를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다. 문 대통령이 택해야할 길은 너무도 명확히 보이는데, 정반대로 가려는 기류가 강하다.
“후보자에 대해 제기된 모든 의혹은 한점 남김없이 규명하겠다. 그 결과 만약 불법이 드러나면 즉시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겠다. 하지만 진실이 완전히 규명되기 이전엔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후보자에게 일할 기회를 주자”는 식의 논리를 들이대며 임명을 강행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태의 수습이 아니라,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다. 어제 한일 정보보호협정 폐기 결정에서도 보이듯 지지세력만 바라보며 마이웨이 하려는 성향은 대통령 자신의 가장 큰 장벽인 것 같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