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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이바라키현 공무원의 e메일[현장에서/변종국]

입력 | 2019-08-23 03:00:00


한국에서 열린 여행박람회에 참석한 이바라키현 관계자들. 동아일보DB

변종국 산업1부 기자

국적 항공사로는 유일하게 일본 이바라키 공항에 정기편을 운항하던 이스타항공이 최근 한일 관계 악화로 운항 중단을 결정한 직후였다. 이바라키현 공무원으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은 것. 지난해 말 취재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난 관광진흥 업무 담당자인 그는 “노선이 중단돼 너무 슬프다”고 적었다. 이어 “하지만 세상이 끝난 것은 아니니, 다시 (노선 회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도 했다.

몇 줄 안 되는 e메일이었지만 문장마다 말줄임표(…)가 있었다. 그만큼 아쉬움이 크다는 의미로 읽혔다. e메일을 보낸 그가 한국∼이바라키 노선의 개설과 유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바라키는 도쿄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일종의 위성도시이다. 도쿄와 가까워 2010년 아시아나항공이 국내에서 처음 취항했지만 이듬해 동일본 대지진으로 운항이 중단됐다. 이후 몇 편의 부정기편이 뜨긴 했지만 정기 노선은 없었다. 그러자 이바라키현 공무원들은 한국을 수차례 방문해 항공사와 여행사 등을 돌며 적극적인 구애를 했다. 한국인도 여러 명 채용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관광박람회와 관련 세미나 등에도 참석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7월부터 이바라키에 정기편을 띄우기 시작했다.

올해 봄 기자가 한국에서 다시 만난 이바라키현 공무원들은 거리의 간판을 읽고 간단한 한국어도 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노선 취항 이후 한국을 잘 알고 싶어 한국어를 틈틈이 배웠다는 것이다. 이바라키현은 한일 관계가 악화되던 지난달에도 이바라키 공항에서 한복을 입고 김치와 회오리감자 등 한국의 길거리 음식을 체험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한국인 여행객을 유치하는 것을 넘어 일본인들의 한국 여행도 독려한 것이다.

지난해 8월 이후 이바라키 공항을 통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총 9000여 명이다. 이처럼 한일 교류가 늘어나던 상황에서 이바라키 노선 중단은 이바라키현 공무원들에겐 가슴 아픈 소식일 수밖에 없다. 이바라키현에 고용돼 ‘한국 알리기’를 하고 있는 한국인 직원은 “노선 중단 소식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며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만큼 신중하게 시간을 들여 차선책을 강구하고 다시 이바라키에 한국 항공기가 뜨기를 바란다”고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스타항공 측은 “가슴 아픈 일이 항공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도 최근 분위기를 의식한 듯 향후 일정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양국 관계 악화는 민간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어찌할 수 없는 측면이 크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별개로 개별 기업이나 개별 지자체는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언젠가 관계가 복원될 때를 기다리며 말이다.

변종국 산업1부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