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510兆 슈퍼예산 편성 작업… 복지예산 비중 35% 처음 넘을듯
정부가 내년에 500조 원이 넘는 ‘슈퍼 예산’ 편성을 추진 중인 가운데 증가분의 절반가량이 복지사업에 투입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재정을 마중물로 성장잠재력을 키우려 해도 한번 늘리면 줄이기 힘든 복지의 함정에 빠져 확장적 재정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재정 당국과 국회에 따르면 정부는 ‘2020년 예산안’을 510조 원대 규모로 편성하기로 하고 막바지 조율 중이다. 예산안은 다음 달 3일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내년 전체 예산 규모는 올해보다 40조 원(9%) 남짓 늘어난 510조 원대다. 이 가운데 복지 관련 예산은 182조 원으로 올해 복지 예산(161조 원)보다 21조 원 늘어난다. 전체 예산 증가분의 절반가량이 복지에 투입되는 구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추가로 크게 늘어나는 복지사업은 없지만 기존에 만들어진 복지정책을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돈이 든다”고 했다.
복지 예산 증액 규모는 2010년에는 10조 원 정도였지만 2018년 15조2000억 원, 2019년 16조1000억 원 등으로 크게 늘고 있다. 전체 예산에서 복지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27.7%에서 2019년 34.3%로 늘어난 데 이어 내년에는 처음으로 35%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내년 예산은 경제활력 뒷받침, 사회안전망 강화, 국민편익 증진의 3개 카테고리에 집중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 활력위해 재정 늘린다면서… R&D 예산비중은 되레 축소▼
내년 예산안에서 복지 예산 비중이 35%로 역대 최대 수준에 이르는 것은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각종 수당사업 등 복지혜택을 꾸준히 늘렸기 때문이다. 복지 사업은 한번 만들면 덩치를 줄이기 어렵고, 고령화 추세에 따라 수혜 대상이 확대되면서 사업 규모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연구개발(R&D)과 기업 지원 등 경제 활력 지원예산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줄고 있다. ‘슈퍼 예산’을 편성해도 재정을 마중물로 국가경쟁력을 키우기는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 수당 지원금 늘며 의무지출 비중 50% 돌파
지난해 9월 신설된 아동수당과 내년 7월 도입되는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 등은 현 정부에서 새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복지 정책이다. 저소득층 구직자들에게 최대 6개월간 월 50만 원을 지원하는 이 제도는 지원 규모가 내년 35만 명에서 2022년까지 60만 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관련 예산은 내년 5040억 원에서 2022년 약 1조 원까지 증가한다.
만 6세 미만 아동에게 주던 아동수당은 다음 달부터 만 7세 미만으로 확대된다. 올해 예산만 해도 2조1600억 원에 이르지만 내년에는 더 늘어날 예정이다.
지난달 월간 기준 사상 최대치(7589억 원)를 찍은 구직급여는 하한액이 최저임금과 연동돼 있어 정부가 따로 손을 대지 않아도 매년 오르는 구조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급격히 뛰며 구직급여 하한액은 2017년 하루 4만6584원에서 올해 6만120원으로 2년 만에 약 29% 늘었다. 이 밖에 중위소득, 근로자 월평균소득 같은 소득 기준을 잣대로 수급자를 선정하는 사업이 많아 전체 소득이 오르면 수급대상이 늘어나는 사업도 많다. 정부 관계자는 “정권 초기 3년간 사회안전망 확충에 집중한 결과 신규 사업을 크게 벌이지 않아도 대규모 예산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 R&D 예산 비중 점점 감소
정부와 국회는 내년에 510조 원이 넘는 ‘슈퍼 예산’을 구상 중이다.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민간의 성장 창출력이 떨어진 만큼 정부가 재정을 풀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여당 일부에서는 최대 530조 원까지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정부는 재정건전성 등을 이유로 9%대 인상률 범위 안에서 예산을 증액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각 부처가 정부에 요구한 예산 인상 수준은 6.2%였으나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하고 일본 수출 규제까지 맞물리자 경기 부양을 위해 지난해 수준(9.5%)으로 예산 증가율을 맞췄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지비용이 계속 늘어나는 만큼 정부가 세수 확보 대책을 마련해야 재정건전성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다”며 “예산 편성의 주안점을 복지와 성장 가운데 어디에 둘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주애진 jaj@donga.com·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