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혁명/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 지음·윤제원 옮김/464쪽·2만8000원·다산사이언스
2010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 지은 건축가 장 누벨의 붉은색 ‘서펜타인 파빌리온’. 날카롭고 불규칙한 모양이 행복감보다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준다. ⓒ James Newton/VIEW
실제로 어린 시절이나 성인이 돼 첫 출근 날을 추억할 때 꼭 장소에 대한 기억을 동반한다. 이것은 뇌에서 장기 기억을 형성할 때 가동하는 세포와 공간을 찾는 세포가 같은 부위에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삶의 90%를 인공 건축물에서 보낸다. 아파트, 사무실, 학교, 도로, 지하철…. 그래서 건축물 환경이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화두는 그 연장선에서 ‘건축에서 디자인이 왜 중요한가?’다. 이 질문에 전문가들도 답을 하라면 쩔쩔맨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건축평론가인 저자는 뇌과학과 인지신경심리학계에서 새롭게 발견된 지식을 통해 건축 환경이 인간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건축가 알바르 알토는 자신의 고향 핀란드 북부에 건물을 만들면서 층계바닥을 밝은 노란색으로 칠하고 금속 난간은 목재로 감쌌다. 사람들이 샛노란 계단에 나무 난간이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따스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햅틱’ 인상은 우리가 마음속으로 촉각 시뮬레이션을 하게 만드는 시각 자극으로, 단지 대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각 운동을 일으킨다.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에 세워진 애니시 커푸어의 110t짜리 조형물 ‘클라우드 게이트’.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을 비추면서 개인과 주변 환경을 연결하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게티 이미지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노모를 노인 요양시설이나, 친척 집으로 옮길 것을 고민할 때 가능하면 옮기지 않는 편이 낫다고 조언한다. 오랜 세월 함께한 집을 떠난다는 ‘인지적’ 경험이 ‘신체’ 건강에 해롭게 작용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인간의 신체와 뇌는 특히 자연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자연 풍광을 20초만 접해도 빨라진 심장 박동이 진정된다. 담낭 수술을 받은 뒤 낙엽수가 보이는 병실에 머문 환자는 벽돌이 보이는 병실에서 머문 환자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저자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맨해튼의 월드트레이드센터, 프랑스의 아미앵 대성당,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등 세계 최고와 최악의 건물, 도시경관을 분석한다. 서울의 청계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사동 쌈지길, 북촌 한옥에 대한 단상도 흥미롭다. 그는 “11km가 넘는 청계천을 따라 눈높이로 쌓아올린 돌담은 인간에게 풍부한 물질적 경험과 자극을 주는 휴먼스케일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삶의 질을 높이려면 정서를 건강하게 해주는 적절한 인지자극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증거”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