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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日 사회 뒤덮은 ‘극우’ 실체 추적

입력 | 2019-08-24 03:00:00

◇일본 ‘우익’의 현대사/야스다 고이치 지음·이재우 옮김/340쪽·1만6000원·오월의봄




2017년 5월 일본 나고야의 한 금융기관에 한 남성이 침입했다. 그는 등유를 뿌리며 불을 지르려다 제지당했다.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 붙잡힌 남성은 재판정에서 “위안부 문제로 이전부터 한국에 나쁜 감정을 가졌다.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에 분노를 느낀다. 한국을 용서할 수 없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과격한 폭력은 일본 우익의 상징. 하지만 이 남성은 조금 달랐다. 평생 우익 관련 단체, 조직과 연결된 적이 없었다. 65세 은퇴자인 그는 전 직장에서는 ‘우수 직원’으로, 이웃으로부터는 ‘점잖은 아저씨’라는 평을 듣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수수한 느낌마저 주는 이 인물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일본의 우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극우의 공기’가 일본을 뒤덮고 있다. 군복을 입고 욱일승천기를 들었던 과거 우익은 이제 일반인 사이로 침투 중이다. 저자는 이런 분위기에 우려를 느껴 펜을 들었다. 저널리스트 출신 논픽션 작가로 앞서 ‘거리로 나온 넷우익’을 출간한 저자는 “일본 우익의 주체는 극우의 분위기를 탄 일반인”이라고 규정했다.

오늘날 일본 극우의 실체를 추적하기 위해 ‘넷우익’ 이전, 그리고 이보다 훨씬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형성된 우익 사상의 모태를 추적한다. 그가 ‘우익의 현대사’로 명명한 시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종전 이후 전범 세력이 퇴출되고 폭력이 난무한 1970년까지. 천황이 전쟁의 책임을 언급하며 ‘죄인’임을 밝히자 집단적 광기가 드러난 시기다. 두 번째는 1970년 이후 ‘개헌’이라는 새로운 기치를 걸고 ‘재특회’ ‘일본회의’ 등 세력이 공존하는 최근까지다.

일본 우익 분류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일본 우익의 유형을 무려 6가지로 구분했다. 전후 질서를 부정하고 천황제로 돌아가자는 ‘전통 우익’, 군복을 입고 거리에 선전차량을 타고 다니며 반공, 반좌익을 모토로 움직이는 ‘행동 우익’, 반공과 애국을 명분으로 숱한 폭력 사건을 일으킨 ‘임협 우익’이 있다. 타 우익들과 달리 ‘반미’를 외친 ‘신우익’, 종교 보수단체를 모체로 한 최대 우익 단체인 일본회의와 신도정치연맹을 거느린 ‘종교 보수’, 마지막으로 인종차별과 혐오발언을 일삼는 ‘넷우익’이다.

일본 우익이 한때 한국 군사정권과 파트너였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북한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일종의 공생관계였다는 것이다. 파트너십은 1987년 한국의 민주화로 종결됐다.

가장 최근까지 일본 우익의 선봉에 섰던 ‘재특회’는 오히려 힘이 빠진 모양새다. 저자는 “재특회가 없어도 될 만큼 사회에 이미 극우 공기가 가득 찼기 때문”이라고 봤다. 나라를 사랑하고 국가 체제를 수호하는 관점에서 우익은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오늘날 우익에 되묻는다.

“우익은 국가의 손발 행세만 하면 될까? 마이너리티를 위협하기만 하는 우익은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