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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섬재즈페스티벌’ 성공 신화 이끈 인재진 총감독

입력 | 2019-08-24 03:00:00

“외딴 섬에서 재즈만으로 흥행, 미친 도전이었죠”




경기 가평군의 자라섬을 세계적인 재즈 천국으로 만든 인재진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총감독. 재즈 인생을 돌아보듯 미국의 사진작가 윌리엄 클랙스턴과 독일의 음악 저널리스트 겸 재즈 프로듀서인 요아힘 E. 베렌트의 저서 ‘JAZZ LIFE’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경기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북한강 작은 섬. 자라섬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매년 가을 세계적인 재즈 축제가 열린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올해도 10월 4일부터 6일까지 열린다. 2004년 첫 회를 시작한 이후 올해 16번째 축제. 그동안 전 세계 55개국에서 내로라하는 재즈 뮤지션 1105개 팀이 공연을 펼친 무대다.

비만 오면 잠기는 외딴 섬에서 재즈 축제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처음에 한두 번 하고 말겠지” 등 온갖 소리를 들어가며 의심 반 우려 반으로 막을 올린 축제는 이제 누적 관객 200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 대표 음악 축제가 됐다. 경기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을 관광 코스이기도 하다.

이 축제를 기획해서 지금까지 끌고 온 인재진 총감독(54·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은 세계 재즈 지도에 한국을 새겨 넣은 개척자로 불린다. 재즈를 논할 때면 그의 이름이 붙어 다닌다. 근사한 공연장에서 감상하던 재즈를 섬에서 축제로 키워 즐기면 꽤나 좋을 듯싶다는 4차원 같은 생각을 실천으로 밀어붙인 고집쟁이다. ‘거장(巨匠)’으로 부르는 건 그가 불편해할지 모르겠으나 재즈 공연을 지속 가능한 축제로 성장시킨 그의 기획력과 추진력이 국내 공연 비즈니스 모델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 “재즈 축제가 아닌 음악으로 포장된 소풍”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고 했죠. 서울에서 해도 망하는 게 재즈 공연이었거든요. 게다가 저라는 사람이 대학로 딸기소극장 재즈 공연으로 기획을 시작한 이후 흥행에 늘 실패해서 업계에서 ‘마이너스의 손’이었으니 기대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어머니까지도 말리셨죠.”

순탄하지 않았던 시작. 외국의 전통 있는 재즈페스티벌처럼 아기자기한 축제를 섬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단발 재즈 공연조차 성공한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인 감독은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해보고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도전을 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업계 기획자들이 왜 재즈 공연을 하지 않는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스스로의 확신부터 필요했다. 페스티벌 기획 단계에서 단호하게 재즈 공연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 한국에서는 어떠한 재즈, 재즈 공연이 맞을지 고민이 컸어요. 외연을 재즈라 하지 않고 음악이라고 해야겠다고 넓혔어요. 여기에 자연, 가족, 휴식을 접목시키니 소풍이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포장된 소풍의 개념을 축제의 본질로 도출할 수 있었죠.”

그래서 1회 축제부터 3회까지는 재즈만 고집하지 않았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팝이나 가요도 소개하면서 다가갔다. 인 감독은 “가족이 함께 다양한 음악을 듣다가 재즈도 괜찮은, 그런 예술적 체험의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브랜드가 알려지고 단골 관객이 축제 분위기에 적응한 4회 때부터는 100% 재즈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당시 유럽의 많은 재즈페스티벌이 대중성을 이유로 팝 프로그램을 끌어들인 것과 반대로 재즈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해외 유명 재즈 연주자들이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 주목하고 참여하고 싶어 했어요. 높이 평가하기도 했죠. ‘순전히 재즈만으로 관객을 모을 수 있는 페스티벌이 전 세계에서 몇 개나 될까’라며 놀라더라고요.”

○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신용불량자 시절

축제는 모든 공연 기획자들의 로망이다. 이런 축제를 만들어냈지만 3회 때까지 금전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인 감독의 현재 거처는 가평이다. 지금이야 사정이 다르지만, 당시에는 운영비에 보태려고 어머니 집까지 팔았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가평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인 감독은 “페스티벌을 시작하고 몇 년간은 신용불량자였다. 6회 때 와서야 간신히 한도 30만 원짜리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운영비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닐 수밖에 없던 자신의 처지가 일에 대한 확신을 더 강하게 심어줬다. 위기가 오히려 의지를 지탱해준 역할을 했다.

“사실 믿음, 신뢰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내 스스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당시 돈이 없지만 뭔가 ‘Something special’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초반 고비를 넘고 아시아 최고의 재즈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하는 단계에서 느끼는 보람도 있다. 재즈가 아는 만큼 들리는 어려운 전문 음악 장르라는 선입견을 깨면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재즈의 묘미를 제공한 것이다. 인 감독은 “가평에서는 이제 재즈를 모르는 할머니들이 없을 정도다. 즉흥적인 연주가 가미되는 재즈 장르는 우리 인생, 삶과도 비슷하다. 감성에 호소하면서 인생을 말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본다. 모든 사람이 재즈를 즐길 수는 없지만 전혀 음악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재즈가 생소하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 자체만으로 뿌듯하다”고 했다.

○ 단골 관객 넘쳐나는 건강한 축제로 지속 원해

“신규 관객 유치에 목말라 한없이 무한성장을 바라는 건 의미가 없어요. 건강한 축제가 지속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축제 초창기에 왔던 학생들이 중장년이 되어 가족들과 다시 축제에 와서 지난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감성의 창구가 됐으면 해요.”

관객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보다는 스태프와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에서 서로 감동과 만족을 느끼는 본질이 유지되는 선에서 축제가 경쟁력을 갖길 원한다.

“단 한 명의 관객이 온다고 해도 어때요. 축제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스태프에게서 나오는 좋은 기운이 무대의 아티스트를 거쳐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반대로 관객들의 만족감이 아티스트와 스태프에 원활하게 전달된다면 그 자체로 성공이죠.”

국내 대표 재즈 축제 브랜드로 더 세계로 뻗어가고픈 욕심은 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브랜드로 국내 다른 지역과 외국에서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것도 시도해볼 계획이다.

그가 재즈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재즈가수 나윤선 씨(50)다. 인 감독이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결혼”이라고 할 만큼 소중한 존재다. 인 감독은 “동종업계 아티스트로 실제 여러 나라를 돌며 재즈 공연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획자인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아내와 지향점이 같다는 것이 너무 큰 축복”이라고 했다.

인 감독은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20회째가 될 즈음해서 조용한 일상 변화를 꿈꾸고 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총감독 자리를 내려놓고 잠시라도 개인적 즐거움을 누리는 삶을 살아볼 생각도 있다. 자기가 키워놓은 재즈 시장의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배려도 있어서다.

“했던 일에 비해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성공한 건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재즈 공연 기획이라는 특정 분야에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몇 년 참고 일을 한 사람이 없어서였고 운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기획자는 어떤 자리에서든 아티스트와 공존하면서 열린 사고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봐요.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새롭고 다양한 재즈 비즈니스를 시도해보고 싶어요.”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