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고교 2학년이 2주 인턴으로 의학논문 제1저자가 된다고?

입력 | 2019-08-24 16:57:00

특집 | 2030 폭발시킨 반칙과 특권의 조국
누군가의 피땀 어린 연구 성과를 훔쳐간 ‘강도 행위’




문제가 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영문의학논문. [shutterstock, 사진 제공 · GIB]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2008년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단국대 의대 인턴십 프로그램에 2주 참여하고 국내 학술지에 발표된 영어의학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됐다는 ‘동아일보’ 특종 보도가 나왔다. 조 후보자의 딸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2009년 고3 여름방학 때도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 3주짜리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호주 학술지에 실린 생물학논문의 제3저자로 등재됐음이 추가로 밝혀졌다. 또 이런 경력을 앞세워 고려대 생명과학대 대입 수시전형 중 하나인 ‘세계선도인재전형’에 합격했음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의 대다수는 학부모나 수험생 관점에서 분개한다. 상당한 자산가이자 둘 다 교수인 부모의 인맥을 활용해 다른 학생들은 넘볼 수도 없는 특혜를 누린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에 기초한 분노다. 대입 중심의 한국 교육제도와 부유층 자제에게 유리한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해오던 조국을 기억하는 사람들로선 배신감을 느끼기 충분하다.

제1저자의 비중

하지만 인문계 출신은 대부분 모르는 또 다른 폐해가 있다. 해당 논문 작성에 참여한 다른 연구자의 피땀을 조 후보자의 딸이 훔쳐갔다는 연구윤리의 문제다. 

인문계 논문은 해당 논문 집필자 1명과 지도교수 둘만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공계 논문은 대부분 팀플레이로 이뤄진다. 아이디어 제공자, 이를 입증하고자 장기간에 걸쳐 진행하는 다양한 실험, 이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대표 집필자, 그리고 이런 논문의 약점을 보완해줄 외부 전문가의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문 필자가 여럿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2015년 세계적 과학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RL)’에 실린 물리학 논문의 공저자는 무려 5154명에 이르렀다. 해당 논문에 영감을 주거나 도움을 준 사람들을 빠짐없이 저자로 밝히는 것이 연구윤리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1저자가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저자 이름은 논문 제목 바로 밑에 들어간다. 보통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 제1저자,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교신저자다. 제1저자는 연구를 도맡아 한 실무자이자 사실상 논문의 주인공이고, 교신저자는 연구책임자이면서 동시에 저널을 비롯한 외부와 소통하는 사람이다. 이공계 연구실에서 이는 주로 지도교수의 몫이다. 

과거엔 기관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논문 업적평가를 할 때 100점으로 환산하면 제1저자와 교신저자가 40점씩, 나머지 공저자들이 20점을 N분의 1로 나눠 가졌다. 최근에는 공저자 수가 너무 늘어나다 보니 제1저자와 교신저자에게만 평가점수를 주는 추세다. 

문제가 됐던 의학논문을 살펴보자. 2009년 12월 대한병리학회에 제출된 ‘출산 전후 허혈성 저산소뇌병증(HIE)에서 혈관내피 산화질소 합성효소 유전자의 다형성’이라는 영어논문이다. 제1저자는 조 후보자의 딸이고 교신저자는 해당 지도교수인 단국대 장모 교수다. 

장 교수는 해당 논문을 조 후보자 딸에게 양보한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교신저자로 등재됐으니 손해 본 것이 없다. 그럼 그 손해는 누구에게 돌아갔을까. 

의학논문은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대교수가 직접 실험하거나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연구실 소속 석·박사급 연구원들이 교수와 논의 하에 진행한다. 게다가 해당 논문은 유전자 변이를 추적하는 전문가의 노하우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피해를 본 사람은 그 실험에 핵심적 아이디어를 내거나 주도적으로 실험을 맡거나, 아니면 논문을 직접 집필한 해당 연구실 소속 석·박사 중 한 명일 수밖에 없다. 최소 몇 개월 이상 공들인 논문을 달랑 2주 얼굴 비춘 고2 학생에게 빼앗기는 기분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신고조차 어려운 ‘논문 강도질’

2014년 인턴직원으로 세계적 과학 논문의 제1저자가 돼 화제를 모은 조 암스테드. [사진 제공 ·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


‘강도를 당하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강도질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논문 강도질은 신고하기 어렵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해 조사과정에서 누가 누구를 고발했는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피해자는 고발 뒤에도 가해자 밑에서 연구 인생을 저당 잡힌 채 계속 논문을 써야 한다.’ 

‘과학동아’ 2015년 10월호에 실린 심층 기획기사 ‘논문에서…내 이름이 사라졌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생물학·의학 분야 연구자의 온라인 커뮤니티 ‘생물학연구정보센터(브릭)’가 연구자 11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8%가 ‘최근 3년간 저자 순서 교체나 저자 끼워 넣기 등 연구 부정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고 전하면서 그 이유를 적시한 것이다. 이공계 논문의 저작권 부정 실태를 심층 고발한 이 기사에서 연구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바로 ‘제1저자가 바뀌는 일’이다. 

‘특별한 사유 없이 제1저자가 제2저자로 밀린다면 ‘논문을 뺏겼다’고 말할 수 있다. 이강수 생물학연구정보센터(브릭) 운영실장은 “저자권 갈등을 겪었다는 설문조사 응답 가운데 제1저자 문제의 비율이 가장 크다고 예상한다”고 답했다. 구본경 영국 케임브리지대 줄기세포연구소 그룹리더도 “저자권 갈등으로 연구자가 충격을 받았다면, 그중 대부분은 제1저자 문제”라고 말했다.’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아주 이례적으로. 2014년 7월 영국 언론은 난치성 질환인 낭포성섬유증의 새로운 원인을 규명한 논문의 제1저자가 여름방학 기간 병원에서 일했던 여성 인턴직원이라는 점을 크게 보도했다. 세계적 과학잡지 ‘퍼블릭 라이브러리 오브 사이언스’에 실린 이 논문은 낭포성섬유증을 앓는 30개국 7만5000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전체 환자의 절반가량(47.7%)이 아스페르길루스 곰팡이에 감염됐음을 밝혀냈다. 주로 백인에게만 발생하며 미국과 영국이 발병률 1, 2위를 다투는 이 질병에 대한 획기적 치료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인턴직원이 제1저자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 조 암스테드는 여름방학 기간 고향인 맨체스터의 위던쇼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전 세계 낭포성섬유증 환자 수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 통계치가 없음을 발견한 그는 이 질환에 걸린 환자들에게 일일이 e메일을 보내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여름방학 내내 수백 시간을 쓰고도 모자라자 학교로 돌아간 뒤에도 무급으로 9개월간 더 조사에 매달려 7만 명 넘는 환자의 정보를 입수한 끝에 특정 곰팡이가 범인임을 밝혀낸 것이다. 

같은 인턴직원이긴 했지만 암스테드는 고등학생은 아니었다. 영국 뉴캐슬대 의대 2학년생이었다. 조 후보자 딸의 업적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사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03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