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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 제때 못 먹고 밤에 폭식하는 당신, 어지럼증 있다면…

입력 | 2019-08-25 16:15:00

동아일보 DB


근육운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준비운동이 필수다. 하물며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키는 일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위장, 대장 등 소화기에는 팔다리 근육보다 훨씬 섬세한 근육과 신경이 소화를 위해 효소를 분비하고 음식물을 흔들어 삭이는 작용(연동운동)을 한다. 하지만 TV를 보면서 식사를 하거나 업무를 하며 식사를 하는 행동은 소화에 도움이 안 된다. 소화기의 근육과 신경으로 혈액과 영양분이 집중돼야 하는데 밥을 먹으며 일을 동시에 하면 이들이 다른 장기로 분산되면서 소화력이 떨어진다. 위액 분비력도 떨어지고 위장관의 운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식욕부진, 체증, 속 더부룩함, 나아가 위통, 오심, 구토, 어지럼증 증상까지 생길 수 있다.

숙종이 딱 그랬다. 숙종은 성격이 급해 식사시간을 건너뛰거나 제때 식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임금이 식욕을 잃고 수라를 들지 못하자 이이명이 건강회복을 위한 차자를 올리며 ‘임금께서 반드시 문서를 모두 본 후에 수라(水刺)를 들겠다 하셨으니 이 때문에 끼니때를 잃은 적이 많았습니다. 무리하심이 이와 같으니 병이 깊어졌습니다’ 진언했다.”(재위 36년 숙종실록) 이런 지적은 벌써 재위 29년에도 제기됐다. “사람이 자고 먹는 것을 제때에 하여야 하는데 나는(숙종은) 그렇지 못하였다. 성질이 너그럽고 느슨하지 못하여 일이 있으면 내던져 두지를 못하고 출납(出納)하는 문서를 꼭 두세 번씩 훑어보고, 듣고 결단하는 것도 지체함이 없었다. 그러자니 오후에야 비로소 밥을 먹게 되고 밤중에도 잠을 자지 못하였다. 내가 병의 원인이 있는 곳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또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임금의 식욕부진은 구담(口淡)이라고 한다. 승정원일기에 숙종의 구담 증상은 무려 3197회에 걸쳐 언급된다. 숙종은 어머니 명성왕후의 극성스런 돌봄을 받았다. 음식에 독이 들어갔을까 임금인 아들의 수라를 직접 챙겼다. 집밥을 먹은 덕택인지 숙종은 46년간 왕좌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숙종의 소화기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업무에 쫓긴 나머지 낮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때를 놓쳐 급하게 하고 밤 식사는 너무 많이 먹는 습관이 화근이었다.

야식을 먹고 바로 잠에 들면 위속의 음식은 완전히 소화되지 못한 채 남아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아무리 신선한 음식도 위속에 오래 정체하면 발효돼 가스가 생기고 사람의 심장을 압박하거나 허리를 굵게 하고 위장 점막을 약화시킨다. 그런데 숙종은 2경, 즉 오후 10시쯤에도 만두를 야참으로 즐겨먹었다고 한다. 숙종의 식욕부진과 위 무력증의 악순환은 어지럼증으로 이어졌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숙종은 재위기간 233회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한의학은 어지럼증의 원인을 비위(脾胃)의 소화기능 허약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숙종의 어지럼증에 처방된 자음건비탕의 주재료인 백출과 반하는 비위의 기능을 보강하고 평형을 주도하는 전정기능을 보강한다. 동의보감은 소화력 장애로 인한 어지럼증의 식보에 소 양(첫 번째 위)을 추천한다. 소 양은 효종, 현종 뿐 아니라 영조의 대비와 왕비들이 즐겨먹은 최고의 보양식이였다. 건강의 비법은 어렵고 심오한 데 있는 게 아니다. 식사시간을 지키고 될 수 있으면 야식을 피하는 것, 그것만 지켜도 천수를 누릴 수 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