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스마트폰-TV-생활가전 세계 1위 구성원이 일류일 때 국가 자존감 올라가
하임숙 산업1부장
왜 하필 서울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은 변신에 강한 나라다. 이 나라가 30∼40년 만에 완전히 바뀐 걸 보면 그 무엇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집중력 있게 열심히 일하며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한국에서 영감을 얻고 싶다.” 그는 SKT와 삼성전자 경영진을 만나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와 관련한 협력을 논의하고 돌아갔다.
해외 경영인을 만나면 한국의 성과, 한국인의 가능성에 대해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한강의 기적’이 상징하는 과거 성장의 속도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현재 성과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트게스 회장이 SKT와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 계기가 2016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였다. 바로 옆 SKT 부스에 인공지능(AI) 서비스, 지도 시스템, 펫 서비스 등 자신이 구현하고 싶은 모든 서비스가 전시된 걸 보고 반해서 경영진을 찾아가 인연을 맺었다 했다.
그런데 이처럼 성과를 내고 있는 우리 기업에 대해 해외의 평가와 우리 내부의 평가는 어느 순간부터 괴리가 생겼다. 세계 시장에서 뛰려면 한국에서도 시장지배력이 큰 대기업이 되는 게 당연한데도 대기업이라는 존재 자체가 마치 큰 잘못인 듯한 분위기가 있다. 기업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한국의 소재부품 산업이 육성되지 않은 책임을 대기업에 떠넘기는 일부 정치권의 목소리에서 보듯 시스템의 문제도 대기업 탓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대기업은 내부에서 ‘우리는 왜 미움받는가’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기도 했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처럼 그저 자랑스러운 대상이 되면 안 되나. 피겨 여왕 김연아가 서구의 운동인 줄로만 알았던 피겨스케이팅에서 아름답고 강인한 프로그램으로 금메달을 땄을 때, BTS로 통하는 방탄소년단이 올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본상을 받았을 때 우리는 고민하지 않고 환호한다. 김연아를, BTS를 나와 동일시하고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기적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김연아 BTS와 삼성 현대가 다르지 않다. 이미 우리의 대표 선수들은 일류다. 그리고 국가의 자존감은 구성원이 일류일 때 덩달아 오른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