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의 조진웅은 “광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남다른 감정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광대들’은 우리의 이야기이고, 저의 이야기입니다. 연기를 시작할 때 가진 초심을 다시금 꺼내보게 됐어요.”
배우 조진웅(43)은 스스로를 ‘광대’라고 칭하는 데 익숙하다. 연기자로 주목받기 시작할 무렵부터 “재미있는 광대가 되고 싶다”는 말을 종종 꺼내던 그다. 21일 개봉한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제작 영화사심플렉스)은 그런 면에서 조진웅의 마음을 한껏 자극한 작품이다.
영화 개봉을 앞둔 19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진웅은 ‘광대들’에 나오는 대사 한마디를 읊었다.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해!”라는 말이다. 그 역시 충분히 공감하는 말이라고 했다. 하기 싫은 일, 하면 안 되는 일은 “억만금을 줘도 못 한다”고 했다.
‘광대들’은 조선시대 왕에 대한 가짜 미담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은 광대패가 벌이는 이야기다. 조진웅은 광대패의 리더 덕호.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세조에 관한 미담을 만들라’는 부탁을 받고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권력자를 향해 ‘한 방’을 날리는 인물이다.
“2년 전 ‘광대들’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읽고나서 저의 초심이랄까, 아니면 광대의 소신이랄까. 그런 마음을 되짚어보게 됐습니다. 제가 영화 작업을 본격 시작한 지 13년 정도 됐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광대로서의 초심이 많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 영화를 통해 그걸 다시 짚고 싶었어요.”
영화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600년쯤 전이지만 조진웅은 “예나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고 했다. 대중 혹은 민초를 대변하는, 광대가 지녀야 할 일종의 ‘책임’이다. 사람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야 하고, 답답한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역할도 광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진웅은 “요즘은 더욱 ‘광대의식’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고 했다. “최근까지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이잖아요. 그런 문제를 향해서 작품을 통해, 연기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게 바로 광대입니다.”
조진웅이 찾은 곳은 부산의 영도다. 임진왜란 당시 가장 먼저 침략된 곳이 다름 아닌 영도라는 사실을 처음 접한 그는 “갱년기도 아닌데 울컥울컥 했다”며 웃어보였다. 마침 녹화 당일, 일본의 한국 백색국가 제외 발표까지 나왔다. 촬영 현장은 뒤숭숭할 수밖에 없었다.
“배우를 하면서 적당한 타협, 적당한 외압을 받을 수도 있죠. 그런 걸 못 본 척 지나가지 말자고 늘 생각해요. 해야 할 걸 못 본 척 외면하지 말자, 말해야 할 땐 하자, 작품을 통해서라도 표현하자! 물론 하기 싫은 건 죽어도 못하죠. 가령, 다이어트? 저에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하하!”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에서의 조진웅.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사극 다시 한다면, 적어도 영의정 역할이어야”
조진웅은 연일 폭염이 계속되던 지난해 여름 ‘광대들’을 촬영했다. 푹푹 찌는 날씨를 견디는 하루하루, 휴대전화에선 계속 폭염주의를 알리는 재난문자가 울렸다. 이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아찔한 순간도 여러 번. 조진웅은 “휴대전화에 119 번호를 눌러놓고 여차하면 통화버튼을 누르겠다는 마음으로 견뎠다”고 돌이켰다.
사극은 그에게 뜻밖의 어려움도 안겼다. 처음 소화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극을 주도해 이끄는 역할인 만큼 소화해야 할 장면도 많고 그만큼 책임감도 컸기 때문. 조진웅은 “왕 앞에서 굽신거리는 장면을 찍으면서 결심한 게 하나 있다”고 말했다.
“다음에 사극에 출연한다면 왕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영의정은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왕 앞에 무릎 꿇고 앉는 걸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웃음) 무릎이 어찌나 아픈지, 영의정은 적어도 서 있기라도 하잖아요.”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님은 1946년생이세요. 감독님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왜 이런 영화를 하시느냐’고 물어봤어요. 감독님께서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문제를 알아버려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영화뿐이라 영화로 이야기해야 한다고요. 영화 대가를 넘어 ‘장인’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년에 두 세 편의 영화를 꼬박꼬박 내놓는 조진웅이지만 “아직 나를 대표할 만한, 소위 ‘인생작’은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여느 영화들과 달리 묵직한 책임감과 각오로 임한 영화는 있다. 김구 선생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대장 김창수’이다.
“부담을 떨칠 수 없어서 계속 출연을 거절했던 영화였지만 결국 참여했어요. 처음부터 조건을 걸었어요. 김구 선생님의 청년기부터 민족투쟁의 시기, 그리고 마지막까지 3부작으로 그려야 한다고요. 관객 수와 상관없이, 인생의 모든 걸 털어서 꼭 하고 싶은 영화가 ‘김구 3부작’입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